▲ 송정록

경제부장

서울시장으로 출마한 재벌가출신의 국회의원 아들이 세월호 참사 유족들을 상대로 ‘미개한 국민’ 운운했을 때 우리 사회는 충격을 받았다. 가장 전근대적이고 야만적인 표현을 21세기 그것도 우리사회 최상류층 청년의 입을 통해 들어야 하는 현실이 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거나 다른 문화, 다른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그들을 향해 ‘미개하다’는 말을 천연덕스럽게 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우리 사회의 미개함을 반증하는 것 같아 씁쓸하기도 했다.

그러나 다시 돌아보면 그것은 철없는 한 젊은이의 독백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우리 사회의 기득권세력은 여러 경로를 통해 말 만 다르지 비슷한 행태를 보여왔다. 그들이 개발시대를 통해 약탈적 경제체제를 보다 강건히 해왔다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그 행태는 지식정보화사회로 넘어오고 있다는 21세기 들어서도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다. 자본의 탐욕은 시장체제를 발전시켜온 근간이기도 하지만 그로 인한 피해는 기업가보다는 온전히 서민들이 몫이라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세월호만 해도 그렇다. 기업이 망해 다 파산했던 것으로 알았던 회사오너는 갖가지 불법과 편법을 통해 재기했다. 그 회사는 아마추어 수준의 오너 사진작품을 300억원어치나 사주는 등 이런 저런 명목으로 수백억원을 개인 호주머니에 넣어주었다. 수만명의 목숨을 담보로 한 위험한 항해는 이러한 비정상적인 행위들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일반 기업들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중소기업의 영역은 물론 골목상권까지 파고드는 대기업의 횡포는 이제 체념수준까지 왔다고 느낄 정도다. 그렇다고 기업이 사회를 향해 어떤 긍정적인 역할을 하겠다는 신호는 거의 없다. 대기업들이 말로는 동반성장을 외치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대기업의 협력업체 목조르기가 더 심해지고 있다고 아우성이다.

어느 외국계 은행의 국내 CEO는 사회적 공헌에 대한 은행의 책임을 묻자 “돈내고 얼굴에 검댕 묻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은행업무를 잘하는게 사회공언”이라고 태연하게 대답하기도 했다. 이 은행 CEO는 지난 해 28억원의 연봉을 받아 국내 은행장 중 최고 수입을 올렸다고 한다. 그러나 이 은행은 경영난을 이유로 대대적인 구조조정과 함께 춘천지점을 포함해 전국 60여곳의 점포를 폐쇄하기로 했다. 은행의 사회공헌을 구조조정으로 답한 셈이다.

사실 이런 논의가 다소 촌스러울 수는 있다. 한 재벌그룹의 매출액이 국가 GDP의 23%를 점유하고 국내 기업 영업이익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삼성전자로 인해 국내 기업이 삼성‘전자’와 ‘후자’로 나뉘어진다는 이 초일극 사회에 1%의 기득권층이 누리는 이 사회의 불편함이 어디 한두 가지 이겠는가. 국가까지 나서 기업의 투자를 독려하고 이를 위해 규제를 폴어주겠다고 저자세룰 보이고 있는 마당이니 이들의 오만은 요즘 개그프로그램처럼 ‘누려’도 좋을 특권일 수 있다. 한 재벌가 청년의 입에서 거칠게 튀어나온 발언은 어쩌면 이들 1%들이 공유하는 같은 생각의 다른 표현 아닌가 싶기도 하다.

세월호 참사로 인한 정부비판이 쏟아지자 정부는 국가개조프로젝트를 내놓는다고 한다. 아직까지 구체적인 안이 나오고 있지 않지만 핵심은 공직사회의 변화와 국민의식 개혁 쪽에 맞춰져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정부가 뭘 개조하려는지는 몰라도 기득권층의 미개함은 내버려둔 채 국민들에게 또다시 희생과 책임을 강요해서는 안된다. 국민을 또다시 그 대상으로 삼는다면 시작부터 삐걱댈 수 밖에 없다. 만에 하나라도 정부의 새로운 시도가 국민을 계몽과 개화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면 우리사회의 통합이나 진보는 한 발 자국도 나가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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