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 은

삼척 천은사 주지

얼마 전 길을 나섰다가 도로 공사현장을 지나게 되었다. 큰 고개를 넘어가는 위험한 구간이라 곳곳에 안전운행을 하라는 문구가 세워져 있었다. 첫 번째 안내판은 ‘감속’이었다. 서행했다. 조금 더 가니 ‘절대 감속’이라는 두 번째 안내판이 나왔다. 속도를 더 줄였다. 점점 더 위험한 구간이 나오자 이번엔 급기야 ‘제발 감속’이라는 표지까지 등장했다.

참으로 씁쓸했다. 도대체 얼마나 말을 안 들었으면 ‘감속!’, 이 하나만으로도 충분할 표지가 이렇게 통사정까지 하게 되었을까?

우리 근대사는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이란 민족적 시련을 헤쳐 왔다. 그 후 받아들인 신문물과 ‘잘 살아 보세’라는 근면성으로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루게 되었다. 우리는 마음이 바빴다. 21세기 전 세계는 바야흐로 무한경쟁시대에 돌입하게 되면서 그 대열에서 낙오하지 않으려면 오직 앞만 보고 달려가야만 했다. 그리하여 자연스럽게 무엇이든 ‘빨리빨리’란 것이 판치게 되었으며, 그 부산물로 ‘대충대충’ 과 ‘적당히’ 그리고 ‘설마’ 라는 ‘부실종합세트’가 사회 곳곳에 숨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 되어버린 것이다.

지난 4월 16일 진도 앞바다. 대한민국의 역사에 큰 오점으로 기록될 사건이 터졌다. 바로 세월호 침몰사건이다. 낙엽 굴러가는 모습만 봐도 까르르 웃는다는 그 순진무구한 어린 학생들과, 열심히 땀 흘리며 살아가는 착한 우리네 이웃 수백 명이, 그 ‘부실종합세트’의 희생양이 되어 차가운 바닷물 속에 잠겨 버렸다. 아! 이 일을 어찌 한단 말인가? 탐욕에 물든 어른들의 이기심으로 인해 채 피지도 못한 어린 생명들이 희생되고 만 것이다. 이 시대는 돈만 되면 뭐든지 해도 된다는 그런 물질주의, 배금주의가 사회곳곳에 만연해 있다. 이번 참사는 이런 모든 인(因)과 연(緣)이 얽히고 설켜 일어난 과(果)이다. 결국 인재(人災)요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지금 수사과정에서 밝혀지는 피의자들의 행태와 우왕좌왕 수습에 임하는 정부 관계자들을 보면, 무한탐욕을 향해 질주하는 우리네 어리석은 중생들의 표본을 보는 것 같아 화가 치민다.

모든 사고의 원인은 과속이다. 물질의 발전과 함께 의식수준도 같이 성숙되어야 하는데, 속도가 너무 빨라 따라잡질 못한다.

이젠 감속을 좀 해야 한다. 돈 좀 더 벌고, 좋은 차 타고, 더 큰 집에서 사는 것만이 행복의 척도는 아니다. 좀 덜 벌고, 버스타고 다니고, 작은 집에서 지지고 볶고 살아도,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행복을 알아차리기만 하면 이런 참사는 훨씬 줄어들 것이다. 결과보다 과정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다. 조화와 균형은 ‘가속’과 ‘정지’를 잘 조절할 줄 알아야 한다. 안전운행을 위해서는 반드시 브레이크가 필요하다. 그 브레이크는 가속페달 바로 옆에 있다. ‘제발감속’좀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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