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승균

중기중앙회 강원지역회장

비정상을 어렵게 정상화 시켰더니 다시 비정상으로 만드는 법 개정이 추진되고 있다. 최근 안전행정부에서 추진하는 지방계약법 시행령 개정(안)[이하 개정(안)]이 바로 그것인데 중소기업들이 생산하는 주요 자재를 공사에 포함해 건설사에 일괄 발주토록 하고 있어 개정(안)에 통과시 제조중소기업들을 공사업체의 하청업체로 전락이 예상된다.

사전적으로 하도급, 하청의 뜻은 ‘맡은 일을 다시 맡긴다’라는 뜻으로 하도급, 하청이라는 단어 앞에는 항상 ‘부당, 불공정’이라는 부정적인 단어가 따라 붙는다. 그 이유는 맡은 일을 직접 하지않고 다시 맡기면서 중간 마진을 챙기고 갑의 횡포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일례로 ‘맡은 일을 다시 맡긴’ 원청 건설사는 대금을 지급하지 않았고 결국 납품 중소기업은 수소문 끝에 공정위에 제소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이야기는 한주에도 몇 번씩 비슷한 기사를 통해 접하는 내용이다.

그동안 중소기업계에서는 이러한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정부 등 공공기관들이 발주하는 물품·공사입찰 시 직접 중소제조업체로부터 물품 또는 공사용 자재를 구매하도록 지속적으로 요구해 왔으며, 중소기업청에서도 이의 필요성을 인정하여 중소기업자간 경쟁제도와 공사용자재 직접구매제도를 마련하여 제조중소기업으로부터 직접구매토록 함으로써 그간의 문제점들이 개선되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들은 안전행정부의 개정(안)에 따라 물거품이 될 처지에 놓여 있다. 개정(안)에 따르면 공사와 관련이 있는 물품은 모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공사로 발주나게 될 것이고, 이 경우 지난 수년간 중소기업계의 노력으로 정착되었던 중소기업자간 경쟁제도와 공사용자재 직접구매제도는 그 취지에 반해 무색해질 것이다.

안전행정부에서는 설치공사가 필요한 자재를 일선 지자체들이 물품구매로 발주함으로써 공사면허가 없는 무자격 제조업체들이 부실하게 공사하고 있다는 것을 이유로 내세우고 있으나, 중소제조업체들의 현실을 모르고 내린 편향적인 판단이다.

당장 조달청 나라장터 입찰공고를 보더라도 공사업 등록이 필요한 설치조건의 물품입찰은 발주시 공사업 등록을 요구하고 있어 무자격자의 설치와는 거리가 멀다. 또한, 구매 물품에 일부 설치가 필요하다고 해서 공사로 판단하는 것은 주객이 전도된 판단이 아닐 수 없다.

현재 160여개 조합(연합회 산하조합 포함) 등이 참여하고 3개 업종의 대표가 공동위원장을 맡는 ‘지방계약법 개악 저지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가 구성돼 적극 대응에 나서고 있으며 재·보궐선거 전후로 대규모 집회 등 실력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실제로 개정(안)이 시행되면 비대위 참여단체 산하 1만4000개의 회원사, 해당 업체에 근무 중인 40만명의 중소기업 근로자들이 직간접적으로 타격받고 예상 피해액만 7조7000억원으로 추정되고 있다. 정부는 제조중소기업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지 말고 현장의 목소리를 귀 기울여야 한다. 기존 물품제조입찰이 공사입찰로 바뀌면 중소기업 생산물품이 저가 수입제품, 대기업 제품으로 대체되고 우리 경제 성장의 버팀목인 중소제조업이 고사 위기에 처할 수 있음을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 따라서 정부에서는 시행령 개정의 목적을 다시 한 번 생각하고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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