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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 참을 수 없는 가벼움

송정록 2014년 06월 30일 월요일
   
▲ 송정록

경제부장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당선된 직후인 2003년 여름. 한림대에 보수진영 논객들이 모여들었다. 이들의 면면을 봐서는 대회의실도 부족했겠지만 행사장은 초라하기 그지 없는 작은 강의실이었다. 이들은 연이은 대선에서 보수진영이 진보진영에 패한 원인과 대안을 찾기 위해 머리를 맞댔다. 다소 울분이 섞인 그날 토론회에서는 평화나 인권, 자유와 같은 가치들이 진보진영의 전유물로 넘어가도록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는 탄식이 이어졌다. 그것도 모자라 보수진영에게는 무능과 부패, 수구꼴통과 같은 부정적이고 악의적인 수사들이 덧씌워졌다는 자조도 계속됐다.

그러나 이날의 자조와 탄식은 오래가지 않았다. 반성의 절실함은 행동으로 구체화됐다. 보수진영은 본인들에게 씌워진 무능과 부패의 이미지를 소위 그들이 명명한 ‘좌파·종북정권’에 옭아매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그 이후의 선거결과는 굳이 이야기할 필요가 없을 듯하다.

사실 누구의 생각이 보수적이다라고 할 때 이를 이념적 잣대로 들이대기에는 어려운 부분이 많다. 사회가 다변화하는 만큼 다양한 현안들마다 개인들은 다른 판단을 하기 마련이다. 이 많은 경우의 수를 가지고 보수냐 진보냐 나누는 것은 혈액형 네 개로 인류의 성격을 구분하는 것만큼 어리석고 부질없기도 하다. 굳이 이를 나누고 싶다면 유전자 지도처럼 현안별 DNA 염기서열을 모두 읽어 수십억개의 사상조합을 시도하는 것이 어떨까 싶기도 하다.

사정이 이런데도 우리는 눈만 뜨면 보수, 진보간 진영논리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다. 대부분 사실에 근거하기보다는 주의주장에 동원된 논리들이 대부분이다. 특히 선거는 이를 더욱 확대, 증폭시키기 마련이다. 지난 지방선거만 해도 그렇다. 지사선거나 교육감 선거에서 보수진영은 대북문제를 포함한 사상문제 그리고 진보교육감 프레임을 들고 나왔다. 덫을 놓는 입장에서는 당장 써먹기 쉬웠을지 모른다. 접경지역이 바로 인접한 강원도 아닌가. 그러나 그 덫이 얼마나 어리석고 무의미한지 확인하는데는 그렇게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민심은 개인의 사상보다는 정책과 의지에 더 많은 관심을 보였다.

선거는 끝났지만 보수진영이 반성하는 모습은 거의 없는 것 같다. 대선패배의 아픔을 곱씹었던 과거의 기억보다는 아직도 그들이 누리는 영화가 더 큰 탓일 게다. 최근 정국 반전을 이유로 내놓은 두 명의 총리후보와 청와대수석, 장관후보자들의 면면을 보더라도 마찬가지다. 현 정부의 인사를 보면 보수진영이 가지고 있는 인재풀은 꺼내도 꺼내도 같은 공만 나오는 상자같다. 확률게임조차 무시되는 이 괴상한 상자는 역시 그들의 반성없는 우월의식과 궤를 같이하는 것 같다.

우연히 미국의 보수주의를 분석한 글을 보다 매튜 아놀드의 ‘도버해협’이라는 시를 접할 수 있었다. 종교의 쇠퇴를 한탄한 글이다. ‘신앙의 바다도 한 때 만조되어 이 지구해변에 허리띠처럼 누워있었다. 이제 내가 듣는 것은 물러가는 우울하고 긴 파도소리’

혹시 보수진영이 지금상황을 만조라고 느낄지는 알 수 없다. 또 그들의 목소리가 저 넓은 민심의 해변을 두루 걸치고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들의 반성과 성찰이 전제되지 않고는 지금껏 누려온 호사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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