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동열

영동본부 취재국장

요즘 KBS 1TV가 일요일 밤에 방영하는 ‘그날’을 즐겨 본다. 역사를 움직인 결정적인 날을 잡아 시대 배경과 결과를 분석하는 ‘역사저널’ 형식의 토크쇼인데, 전문가들의 심층 진단에다 출연자들의 유머와 위트가 재미를 더한다.개인적으로 우리 역사에서 첫손에 꼽고 싶은 자랑스런 그날은 세종 임금께서 ‘한글 창제를 생각하고, 완성한 그날’이다. 그날이 있음으로 해서 오늘 우리는 지구상에서 가장 과학적인, 현대 IT기기 활용에도 최적인 문자를 가지게 됐다. 만약 한글이 없고, 아직도 한자로 우리 말을 표현한다면, 민족의 정체성이나 문화적 독창성은 여지없이 사라지고, 동아 세계의 중심임을 자부하는 중국의 변방 이미지는 더욱 고착화 됐을테니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끔찍하다.

가깝게는 우리 강원도가 ‘겨울올림픽’ 유치를 결심하고, 3번의 도전 끝에 성사시킨 그날도 강원도 발전에는 ‘역사적 그날’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날’은 어느날 뜻밖의 상황에서 맞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필연과 의지의 소산이다. 우발적이거나 타의에 의한 그날은 대개 그 결과가 부정적이다.

고 정주영 현대 회장의 소떼 방북에 이어 금강산 관광의 물꼬를 튼 1998년의 그날은 냉전의 바다에 훈풍을 선물했지만, 2008년 관광객 피살사건이 발생한 그날은 금강산 관광 중단 및 남북관계 경색과 함께 강원도 지역적으로도 큰 부담과 피해를 양산하는 ‘악몽의 그날’이 됐다. 강릉에서 예를 찾아도 옥계면에 포스코 마그네슘 제련공장이 유치된 그날은 비철금속산업을 토대로 동해안 경제가 도약할 수 있는 큰 기대를 움트게 했지만, 지난해 6월 허술한 설비 탓에 공장의 석탄가스화설비 응축수가 지하로 누출되면서 주변 토양 및 지하수를 오염시킨 그날은 후속 기업유치에도 찬물을 끼얹는 부정적 결과를 낳았다.

이 시점에서 우리의 의지와 필연에 의해 만들 수 있는 새로운 ‘강릉의 그날’을 한번 생각해 보자.

백두대간 동쪽의 낙후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대를 이어 몸부림쳐온 필연적 필요성에다 지구촌 최대 축제인 겨울올림픽 유치까지 더해져 지금 강릉의 모든 꿈과 미래를 아우르는 방향타인 시계침은 올림픽 개막일인 2018년 2월 9일, 그날에 맞춰져 있다. 그러나 이미 개최가 결정된 올림픽은 현시점에서는 역설적으로 ‘지나간 그날’일 뿐이다. ‘새로운 그날’은 올림픽을 준비하면서 그 후를 대비하는 과정의 어느날에 자리잡고 있다. 가령, 올림픽을 계기로 글로벌 관광도시 도약을 꿈꾸는 강릉이 도시재생과 관광발전에 획을 긋는 청사진과 투자를 현실화 시킨다면 그것이야말로 지금 우리가 추구하는 그날이 된다.

강릉은 지금 서울을 1시간대에 연결하는 ‘교통 혁명’까지 현실화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기회인 동시에 우리의 현주소를 냉철하게 진단하게 하는 문제인식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자연 및 인문 문화자원에 주로 의존해온 강릉 관광이 획기적인 사계절 체류형 시설 인프라를 확충하지 않으면, 앞서 여러도시들이 경험했듯이 서울∼강릉 반나절 생활시대에 서울행(行)을 촉발하는 새롭고, 심각한 문제에 다시 직면할 수 있는 것이다.

올림픽과 함께하는 최명희 시장의 민선6기 시정이 세계속의 강릉, 백년대계를 완성하는 ‘그날’의 역사를 창출해 내기를 간절히 기대하고 성원한다.

이제 올림픽 개막은 1300여일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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