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진국

기독교 대한감리회

동부연회보 주필목사

노벨문학작가 헤르만 헤세의 시 가운데 ‘안개 속에서’라는 시가 있다. “이상하다. 안개 속을 거니는 것은”으로 시작하는 그의 시 가운데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어둠은 모든 것에서, 어쩔 수 없이 사람을 조용히 떼어 놓는다.”

어두운 시대다. 사회도 어둡고 인간 내면도 어둡다. 사람을 조용히 떼어 놓는다는 헤세의 말이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시대다. 어둠 속에 있을 때는 사물의 형체도 보이지 않고 색상도 구분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어둠 속에 있을 때는 흰색을 검정색이라고 누군가 우기면 검정색으로 되어버린다. 눈에 보이는 것만 변질되는 것이 아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도 왜곡되어진다. 거짓이 진실로 둔갑하고 불의가 정의로 둔갑한다. 이것이 어둠의 힘이다.

이것을 바로 잡는 데는 오직 한 가지 방법이 존재한다. 그것은 빛을 비추는 것이다. 빛은 감춰진 실체를 폭로한다. 그리하여 진실을 보게 한다. 이것이 빛의 힘이다.

어둠의 힘은 혼돈을 빚어내고 빛의 힘은 질서를 만들어 낸다. 세월호를 비롯해서 군부대 사건 등 연일 발생하는 사고와 사건들을 보면서 그리고 이와 같은 것들이 수많은 의혹과 의문에 뒤덮이는 현실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어떤 힘 아래에 살고 있는가 하는 의문을 많이 갖게 한다. 물론 빛과 어둠은 공존한다. 완전한 빛의 세계도 완전한 어둠의 세계도 이 지상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빛과 어둠 이 둘은 서로 타협하지 않는다. 문제는 무엇이 무엇을 다스리느냐에 따른 것이다. 즉 빛이 어둠을 지배하는가? 아니면 어둠이 빛을 지배하는가 하는 문제다. 당연히 약한 쪽이 지배를 당하기 마련이다.

군대에 있을 때였다. 군 지프에 선탑을 하고 야간에 이동을 하던 중에 고장이 났다. 차는 움직이지만 지프차의 모든 전기 장치가 고장이 나서 단 한 개의 불빛도 비출 수가 없었다. 계기판의 조명조차 아웃되었다. 지나가는 차량이 내가 타고 있던 군용 지프를 발견하지 못하면 그냥 사고로 연결될 판이다. 모든 군대 차량은 무광이기 때문에 빛을 흡수하여서 사고의 위험성은 더욱 컸다. 운전병과 나는 하늘의 보호를 바랄 뿐이었다. 작은 동네의 불빛이 그렇게 그리울 수가 없었다. 거북이걸음을 하여 천신만고 끝에 원통에 있는 본부로 다가갈 무렵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다. 우리와 똑같이 고장이 난 화물차를 보았던 것이다. 그런데 그 작은 화물차는 어두운 밤에도 씽씽 달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눈앞에 나타났다 사라지는 그 화물차를 넋을 놓고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기가 막힌 방법이었다. 비결은 다른 차량의 뒤에 바짝 붙어서 따라가는 것이었다.

그 때 알았다. 내 안에 빛이 약할 때 보다 큰 빛의 뒤를 따르는 것이다. 이 땅에는 큰 빛을 남기고 간 위인들이 많이 있었다. 어둠을 미워하고 빛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면 보다 큰 빛의 뒤를 따르고 그 빛 아래로 하나로 모여야 한다. 그래서 어둠의 힘을 물리치고 어둠이 빛을 다스리지 못하게 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의 후손들은 성실과 정직이 통하는 밝은 빛의 세상에서 살게 해야 한다. 그렇게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 땅에는 어둠을 사랑하는 사람보다 빛을 사랑하는 사람이 더 많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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