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연수

한국문학진흥재단 이사·소설가

무더운 여름이 지나 갔다. 서늘한 온기를 느껴 가을임을 직감한다. 독서의 계절이다. 이즈음 양서의 책 중에 ‘고도를 기다리며’를 호명해 본다.

지난 6·4 지방선거를 통해 모두는 기대 인물을 당당히 뽑았다. 우리는 귀중한 투표로 민주주의에 대한 참뜻을 실감했고 선거는 냉정하고 살벌한 게임이라는 사실도 값진 교훈으로 배웠다 . 선거로 뽑힌 무대 위의 주인공은 명연기로 국민과 시민에게 즐겁고 행복한 미래로 만들어주기를 기대한다. 또한 우리 모두는 무대 위의 명연기를 할 수 있도록 힘찬 박수로 격려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지루하도록 인내하여 온 올 여름. 계절의 자연은 어느 덧 결실의 희망을 담아주는데 아직도 주인공의 표현이 나타나지 않는 것을 기다리는 일은 더욱 허망하다. 부조리 극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사무엘 바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는 연극과 책으로 유명하다. 전위극이나 실험극으로 일컬어지며 ‘기다림의 미학’의 정수를 보여주고 있는 이 작품을 책으로 읽다 보면 작가가 독자의 인내심을 실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고도는 어떤 위대한 인물인가. 그는 정말 오는가? 끝까지 책장을 넘겨 보지만 극의 묘미를 살려주는 클라이맥스나 반전 같은 것은 없다. 그토록 고대하던 고도는 보여주지도 않은 채 더 이상 기다리거나 말거나 관객과 독자가 알아서 선택하라는 결말 처리가 반전이라면 반전이랄까.

2막으로 구성된 극은 결국 고도는 ‘내일 다시 온다’ 는 메시지만 남기며 막을 내린다.

‘고도’는 누구이며 또는 무엇인가? 작가 베커트 자신도 “내가 그것을 알았더라면 작품속에 썼을 것”이라는 대답을 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로 고도에 대한 풀리지 않는 의문은 세인들의 관심이기도 했다 . 오로지 기다리기만 할 뿐인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 두 주인공은 ‘그 것’은 결코 오지 않는다는 진실을 전달하기 위해 종행무진으로 무대 위에서 몸을 날린다.

그들은 온갖 해프닝과 포즈로 어이없는 웃음을 유발시키면서 날마다 ‘그것’이 오기를 소망하며 살아가는 인간세상을 통렬하게 풍자한다. 기다리는 일로 삶을 견디는 지리멸렬한 존재인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는 바로 우리들 자신의 모습이다.

고도는 절망인 동시에 희망이다. 기다림을 포기하지 않기 위하여, 여전히 살아있음을 실감하기 위하여 지루함과 초조, 낭패감을 극복하기 위해 끝없이 지껄이는 그들의 광대놀음은 인간에게 주어진 징벌인지도 모른다. 지구상의 대형사고가 터질 때마다 나는 강하고 위대한 사람이 그리워진다.

굴러 떨어지는 바위를 끊임없이 다시 밀어 올려야하는 시시포스처럼 피할 수 없는 것과 대적함으로써 인간의 자존감을 유지시켜주는 거인, 신화적인 인간이라도 그가 우리 옆에 있어 주었다면 정말 좋겠다.



유시주의 ‘거꾸로 읽는 그리스 로마신화’는 제목에 유혹되어서 읽게 되는 경우가 많다 하고 많은 신들의 이름을 기억해 가며 얽히고 설킨 신들의 족보를 따지다가 포기했던 로마신화를 거꾸로 읽는다면 좀 괜찮을까 싶어서 보긴 하지만 역시 신화속의 존재들이란 늘 복잡하기만 했다. 요즘같은 때는 차라리 그들의 이야기가 마취제처럼 필요한게 아닌가. 시시포스는 인간 중에서 가장 현명하고 신중한 사람이었지만 신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대단히 위험하고 못마땅한 인간 중의 하나였다.

신들의 방해만 되는 일만 골라서 하는 그는 막강한 신인 제우스의 미움을 사서 명계에서 가장 높은 산꼭대기 위의 바위 덩어리를 계속 밀어 올리고 있을 그에게 “자신의 운명을 이기는 승리자”라는 찬사를 비치고 있다.

이제 순박함이 대명사격인 우리는 끈기와 인내로 내 고장을 지켜왔다. 그 순박함의 대명사인 모두는 이제 새로운 변화로 전환해야 한다.

고도는 결코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 기다려야만 하는 존재들의 거룩한 업과 같은 것들에서.아, 우리는 오늘도 기다린다. 고로 존재한다. 새로운, 고도를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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