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동열

영동본부 취재국장

다들 아우성이다. 최대 성수기인 피서철에 연일 비에 젖은 썰렁한 바다만 쳐다본 셈이니 비명이라도 질러야 속이 풀리겠다. 자료를 보니 올해 강릉의 여름해변을 찾은 피서객은 673만명으로 지난해 840만명보다 167만명, 20%나 감소했다. 드러난 수치보다도 체감경기는 더욱 심각해 “올해가 최악이었다”는 반응이 이구동성 터져나오고 있다. 교통망 확충에 따른 당일치기 피서객 증가, 거주지나 대형마트 등에서 모든 소모품을 준비한 뒤 쓰레기만 얹어놓고 떠나는 속칭 ‘짠돌이 피서’의 만연 등 여러 원인 분석이 분분하지만, 가장 큰 원인은 ‘날씨’ 때문이었다는데 원망의 목소리가 모아지고 있다.

별다른 시설 없이 하늘이 준 자연환경에 의존해온 동해안 피서가 ‘하늘’로 인해 치명타를 입은 셈이니 그냥 애만 태울 수밖에 없는 처지다. 이 때문에 전천후 즐길거리 시설 확충 등 투자 유인책이 강화돼야 한다는 지적에 더 힘이 실리고 있다. 그러나 정작 동해안 피서가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점은 매년 ‘해변의 잔치’로 그치고 있다는 한계성이다. 강릉의 전통시장이 피서철에 ‘감자전 축제’를 개최하는 등의 노력도 전개하고 있으나 피서객의 도심 유인은 여전히 절실한 과제다.

이 시점에서 강릉 도심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대역사(大役事)가 초읽기에 들어간 것을 눈여겨보자. 9월15일을 ‘D-day’로 하고 있는 원주∼강릉 복선전철 강릉도심구간 지하화 사업은 근대화 이후 한번도 바뀐 적 없는 강릉 시내의 지도를 바꾸는 큰 사업이다.서울∼강릉 접근시간을 1시간대로 단축시키는 교통혁명적 효과 외에도 2017년에 지하화사업이 완료되면, 강릉도심은 시내 지상철도 부지 5만여㎡와 강릉역 주변 유휴부지 13만2000여㎡를 합해 18만㎡의 새로운 가용공간을 선물처럼 확보하게 된다.

따지고보면 지난 1962년에 개통된 현재의 강릉 도심철도는 산업화·개발시대에 강릉∼서울을 연결하는 혈맥 기능을 수행해 왔으나, 도시 발전과 공간 활용 측면에서는 걸림돌이 된 것 또한 사실이다. 도심은 사방으로 단절되고, 토지이용불균형에 따른 철도 주변의 낙후상은 심화됐다. 철로변에는 쇠락한 노후 건물이 즐비하고, 강릉역 주변의 너른터 노른자위는 텃밭으로 사용되거나 잡초가 무성한 상태로 반세기를 지나쳐왔다.

이제 그곳이 오픈스페이스로 새롭게 열리는 상황은 ‘도시재생’이나 다름없는 변화상을 창출할 수 있는 기회 요인이다. 강릉시 또한 폐철도 부지가 도심에 새 생명을 불어넣는 활로가 될 것이라고 보고 문화와 휴식, 쇼핑이 융합되는 신개념의 도심공간 디자인을 핵심 컨셉으로 폐철도 지상부 토지활용 마스터플랜 수립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곳에 대한민국 대표 전통문화도시에 걸맞은 ‘문화’를 입혀 신(新) 강릉역이 떠나는 공간이 아니라, 들어오고 머무는 공간이 되도록 하자. “도심을 보지 않은면 강릉을 본 것이 아니다”는 입소문이 퍼진다면, 강릉이 자랑하는 도처의 자연·인문자원과 어울려 더욱 큰 시너지 효과를 유발할 것이다.

‘철의 여인’으로 불린 마가렛 대처 전 영국 수상은 국가 부흥의 일성으로 ‘디자인 할 것인가, 쇠망할 것인가(Design or Decline)’라고 일갈했다. 디자인에 국가 발전의 운명이 걸려 있다는 경고였고, 결국 디자인은 영국 경제 부흥의 견인차가 됐다. 도시재생을 위한 역사적인 공간 디자인이 이뤄지는 지금 강릉에 천금처럼 유효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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