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석종

강원외고 교장

영국과 프랑스의 백년전쟁이 막바지로 치닫던 1347년에 프랑스 칼레에서 일어난 일이다.

프랑스 왕이 칼레 방어를 포기하면서 영국 왕 에드워드 6세는 칼레 점령을 쉽게 생각했다.

그러나 칼레 시민들이 합심 단결하여 사력을 다해 성을 지켰다. 에드워드 6세는 성을 포위하고 고사작전을 폈다. 11개월을 버티면서 모든 것이 바닥이 난 칼레 시민들은 항복을 할 수밖에 없었다. 칼레군의 사자가 백기를 들고 영국 왕 앞에 나아가 시민들의 목숨을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일 년여 공격에 화가 난 에드워드 6세는 칼레 시민을 모두 죽이기로 맘먹고 굴욕적인 항복 조건을 제시했다. ‘칼레 시민 중 존경받는 여섯 명의 대표를 뽑아 모자와 신발을 벗고, 겉옷만 걸친 채 밧줄로 몸을 서로 묶고, 영국 왕 앞에 와서 성벽의 열쇠를 바치고, 교수형을 당해야 한다’는 통첩이었다.

항복 조건을 듣고 칼레 시민들이 절망하는 순간에 그 시에서 가장 부유한 위스타슈 드 생 피에르가 앞으로 나섰다. ‘이런 비극적인 사태를 막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마당에 많은 시민이 굶어 죽을 수는 없습니다. 내가 가서 죽겠습니다.’ 그러자 시장 법률가 등의 7명이 자원하게 되었다. 다음 날 출발할 때에는 결심이 흔들릴 것을 염려하여 1명이 미리 자결하여 6명이 떠났다.

여섯 명은 주저 없이 밧줄을 걸고 영국 왕 앞에 나아갔다. 다가오는 모습을 본 영국 왕비는 여섯 명의 영웅적 태도에도 감명을 받았고, 임신 중이었으므로 왕에게 자비를 구하기로 마음을 먹었던 것이었다. 왕이 왕비의 청원을 들어주어 사형 집행을 취소하고 봉쇄를 풀면서 철수했다.

이 감동적 사실은 500년이 지난 1888년 조각가 로뎅에 의해 ‘칼레의 시민’이 예술적으로 탄생했다. 칼레 시민들의 요청은 죽음을 초월하고 당당한 영웅으로 표현되길 원했지만, 로뎅은 고뇌에 차고 죽음의 공포에 떠는 묘사와 비극적이지만 장엄하게 행진하는 위대한 시민 상을 예술로 승화시켰다고 보는 것이다. 처음에는 칼레 시에서 거부했지만 그 작품의 진실함이 더욱 감동적이라고 인정하게 된 후 칼레 시청광장 앞에 영원히 남게 된 것이다.



6인의 영웅적 시민 상은 덴마크 코펜하겐, 영국 런던, 미국, 일본, 스위스 등 12개국에 똑 같이 설치된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나라 서울에도 물론 그 중 한 작품이 있다.

이미 잘 알고 계신 분들도 많을 줄 알면서도 이 글을 써 보는 것은 우리의 교육 현장에 그 정신을 옮겨 보고 싶은 것이다. 우리가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말하지만, “니 죽고 나 살자”는 이기심이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하고 있지는 않은지? 강원외국어 고등학교에 동상을 건립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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