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항저우 서호를 다녀와서

▲ 최동열

영동본부 취재국장

최근 중국 저장성 항저우의 ‘서호(西湖)’를 보고 왔다. 강원도민일보와 항저우보업집단의 국제자매교류 16년차를 맞아 교차 방문단의 일원이 되면서 저 유명한 서호를 만날 기회를 얻었다. 서호는 송나라 천재문인 소동파(蘇東坡)가 그 아름다움을 고대 중국의 대표적인 미인 서시(西施)에 비견한 그대로 매력적인 호수임에는 틀림없었다. 중국 강남 역사의 중심인 인구 700여만명 거대도시 항저우의 상징 답게 고색창연한 옛 문화유산이 곳곳에 들어차 있다는 점이 우선 인상적이었고, 누천년 고도(古都)항저우와 서호를 배경으로 펼쳐져온 역사·문화 스토리가 또한 묘한 흥분을 불러 일으켰다.

앞서 거명한 소동파에서부터 당나라 최고 시인 백거이(白居易), 금(金)나라의 침략에 맞서 싸운 남송의 명장(名將)으로 오늘날 중국인들이 영웅적 흠모의 대상으로 떠받들고 있는 악비(岳飛) 등 익숙한 역사 인물들의 발자취에서부터 와신상담(臥薪嘗膽) 고사를 낳은 춘추전국시대 오(吳)·월(越)의 쟁투, 월나라 미인 서시, 남송의 수도로서의 문화적 자부심 등등의 알토란 같은 이야기 자산이 서호의 유명세를 더했다.

이국의 호수를 보고 우리 것을 떠올리는 것은 당연지사. 유장한 세월을 웅변하듯 아름드리 수양버들이 척척 늘어진 서호 호숫가에서 한반도 동쪽 끝, 경포호를 그려봤다. 호수 둘레로 따지면, 서호(15km)에 비해 서너배 작지만 경포호(4.3km)는 분명 독특한 매력을 가진 가장 한국적인 자연·인문 자원이다. 필자가 서호를 만나기 위해 출국할 즈음, 경포호는 추색(秋色)이 절정으로 치달아 단풍과 호수, 바다의 절묘한 조화가 실로 눈부셨다. 따뜻한 중국 강남에 자리한 항저우의 서호가 그때까지 계절을 잊은 푸른 신록에 묻혀 흐릿한 가을을 보내고 있는 반면, 경포호는 백두대간에서 시작된 단풍이 바다까지 내달려 마지막 몸부림을 치면서 형형색색 현란한 잔치판을 벌여 놓았으니 오히려 사계절에 친숙한 자연미로 볼 때는 경포호가 한수 위라고 여겨졌다. 이 가을이 지나면, 경포호는 흰눈을 만나 전혀 다른 호수인 듯 순백의 멋을 연출할테지만, 중국 강남의 서호는 가을이 저리 희미하니 눈 내리는 겨울 별천지 또한 크게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역사문화자산 또한 서호에 못지않아 모자(母子)가 모두 국가 화폐의 주인공이 된 사임당과 율곡 선생, 천재문인 난설헌과 허균 오누이, 비련의 여인 홍장 등등 경포호가 품고 있는 이야기는 몇날 며칠을 읊어도 모자라고, 서호 주변 만큼 경포호 곁에도 고택과 인문 유산이 즐비하다.

그런데 왜 글로벌 인지도에서 서호는 저토록 유명세를 타고, ‘하늘에 천당이 있다면, 땅에는 항주와 소주가 있다’는 말은 알아도, ‘강릉산수갑천하(江陵山水甲天下)’는 모를까. 인구 기반이 중국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적고, 세계사에서 다뤄져 온 중국과 우리의 역사적 무게 차이에 기인한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강릉과 경포호가 글로벌 인지도를 획기적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기회의 날이 다가오고 있다. 2018년 경포호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강릉 스포츠콤플렉스에서는 ‘겨울올림픽’ 빙상 전종목 경기가 열린다. 습지 복원사업을 통해 멸종위기식물 ‘가시연’이 반세기만에 기적처럼 다시 꽃을 피웠듯 경포호와 함께 곰삭아온 스토리 보따리에 세계인의 흥미를 자극하는 신비로운 동양적 채색을 더하고, 가장 한국적인 자연·인문자원의 매력을 극대화시켜 ‘강릉’과 ‘경포’라는 지명 브랜드를 세계인의 뇌리에 아로새겨야 한다. 오늘 밤에는 경포호에 뜨는 다섯개 달을 오륜기와 연계시키는 묘책부터 고민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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