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돈설

강릉문화원 부원장

을미년 청양의 해가 문을 열었다. 민첩성과 순발력을 겸비한 청양처럼 2015년이 희망으로 가득하길 바란다. 희망하면, ‘아브라카다브라(Abracadabra)’다. 히브리어로 ‘말한 대로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강원도의 올 한해가 아브라카다브라로 시작되고 또 갈무리되었으면 한다. 지금, 강원도의 가장 큰 어젠다는 ‘2018 동계올림픽’이다. 성공개최를 위해 SOC 등 기반구축이 선결돼야 하지만, 가장 큰 명제는 IT와 접목된 문화올림픽이다.

세계사의 큰 흐름을 통해 살펴보면, 국가의 번영을 ‘중심 이동’으로 인식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근대까지는 경제발전이 곧 문화적인 발전을 의미했다. 그런 까닭에 세계의 중심도 명확했다. 하지만, 근대 이후로 들면서 경제적 중심과 문화적 중심이 나뉘게 된다. 19세기 경제의 중심은 영국 런던이었지만, 같은 시기의 문화의 중심은 프랑스 파리였다. 그 시대의 저명한 문화예술가는 대부분 파리에 모여 있었다. 스페인의 피카소, 이탈리아의 모딜리아니, 일본의 후지타 쓰구하루(전쟁화가) 등이 모두 파리로 건너가 공부하고 활약했다. 파리 이전 예술의 중심은 피렌체로 대표되는 이탈리아였다. 그리고 지금 문화예술의 중심은 뉴욕이다.

문화예술의 중심은 경제의 중심과는 확연히 다르다. 문화예술의 경우, 그 중심이 떠나도 그곳에 선명한 ‘발자취’를 남기게 된다. 경제의 중심은 다른 곳으로 이동하면, 그곳에 남겨진 사람들은 쇠퇴와 몰락으로 피폐를 맛보게 된다. 하지만, 문화예술의 중심이었던 곳에는 품격있는 건축물과 명화, 문화와 예술의 향기라는 유산이 남아서 사람들은 이전의 영광을 긍지로 여기며 살아 갈 수 있다. 로마, 피렌체, 파리, 빈과 같은 곳이 지금도 세계적인 관광지로서, ‘동경의 땅’으로 인기를 모으는 것은 그런 문화유산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경제)수도는 조선왕조 이후 서울로 관습화 돼 있다. 국제관계와 시장논리에 따라 수도 서울은 붙박이지만, 문화수도는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 코리아문화수도조직위원회에서 ‘해마다 서울을 옮깁시다’라는 기치를 내걸고 문화수도를 신청 받고 있다. 지역의 독창성을 뽐내고 1년 내내 문화로 흠뻑 젖는다는 기대와 설렘이 설날처럼 다가온다. 이참에 강원도가 움직이고 율곡선생의 혜안과 신사임당의 향기가 그윽한 강릉에서 신청해도 좋을 것이다. 이미 강릉시는 2011년 문광부의 ‘문화의 달 전국행사’를 성공리에 개최하여 호평받은 경험을 갖고 있다. 2017년에 문화수도 프로젝트를 개최하여 붐업기간을 설정해 운영하고, 2018년에는 문화올림픽의 진수를 보여주자는 취지다. 이미 유럽에서는 1985년부터 유럽문화수도사업을 시작했고, 아랍과 아메리카도 문화수도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예로 들면, 2008년 영국 리버풀은 인구 44만명의 도시로 쇠퇴의 기로에 있었지만, 유럽문화수도 행사를 우수하게 개최하여 현재 연간 1500만명 이상이 찾는 국제관광도시로 명성을 이어오고 있다.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어려운 게 바로 우리나라 수도권 집중이다. 이름난 유럽 도시의 인구는 보통 100만명 미만인데, 우리는 2200만명, 전국 인구의 44%가 수도권에 살고 있다. 수도권 집중이 심하다는 일본의 도쿄 인구는 전체의 33%이고, 프랑스 역시 파리권 인구는 19%에 불과하다. 정치, 경제, 교육 등 모든 것이 고양이 이마처럼 좁은 서울에 집중돼 있다. 흔히 일본의 도쿄를 일극집중체제라고 비판하지만 한국의 서울은 신(新)중앙집권체제로 철옹성처럼 견고하기만 하다. 이제는 문화수도를 유치하여 우리지역을 문화융성으로 풀무질하고 문화영토를 넓혀가야 한다. ‘사람의 마음을 모으면 태산도 옮길 수 있다(人心齊 泰山移)’는 시진핑 어록을 기억하자. 그리하여 세밑에는 문화를 통해 아브라카다브라로 뿌리내리고 꽃피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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