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동열

영동본부 취재국장

동해안 곳곳에서 민자 화력발전소 건설사업이 잇따르고 있다. 삼척과 강릉·동해에서 현재 추진·계획되고 있는 것만 4∼5개에 달한다. 국가전력수급이라는 공익적 필요에 의해 추진되는 국책사업이다. 그런데 그 부지면적이 이제껏 동해안에서 거의 경험하지 못한 대단위다. 강릉시 강동면에서 올해 첫 삽을 뜨는 에코파워 민자 발전소만 해도 무려 75만9000㎡에 달한다. 동해안은 백두대간에서부터 해안선까지 가용 면적이 극히 비좁은 곳이기에 대단위 발전소에 내줘야 하는 면적이 더 넓고 크게 느껴진다. 그래서 ‘지도가 바뀌는 대역사(大役事)’라는 표현까지 등장했다. 눈에 익숙한 논·밭과 집이며, 들과 바다가 있던 곳에는 앞으로 거대한 인공 구조물이 줄지어 들어서고, 정겨운 해안선이나 마을의 모습은 지금과는 많이 달라질 것이다.

변화의 예를 가깝게 선행개발이 이뤄진 삼척에서 한번 살펴보자. LNG(액화천연가스) 생산기지가 건설된 원덕읍에서는 도내 유일의 ‘몽돌 해변’이 사라졌고, 세계적 사진 촬영 명소로 명성이 자자했던 월천 하류의 ‘솔섬’ 또한 거대한 LNG 탱크 구조물이 바다를 가로막으면서 옛 풍취를 잃었다. 강원도 최남단, 임금께 올리는 진상미역 생산지로 유명했던 고포에서부터 월천∼호산∼작진을 잇는 수려한 해안선은 LNG기지에다 대규모 화력발전소 건설로 불과 몇년만에 ‘벽해상전(碧海桑田)’ 변화상을 겪었다.

물론 땅과 바다를 그냥 내주는 것은 아니다. 논·밭이며 임야, 주택은 물론 어업권까지 보상이 이뤄지고, 법률에 근거한 주변마을 지원을 포함해 여러 협력사업이 추진된다. 건설 과정에서 경기 부양효과가 발생하고, 완공 후 사업장 인구 유입 등의 효과가 더해지는 것 또한 다른 지역에서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 국책시설을 받아들인 반대급부라고 할 수 있다.

사실 따지고보면, 삶의 터전을 내준데 대한 보상은 물리적으로 보상비 산출이 가능한 유형 자산과 함께 비용 계산 자체가 불가능한 ‘무형의 관념자산’을 포함하는 것이어야 한다. 파도에 차르르∼ 소리를 내며 구르던 고향의 몽돌 해변을 아들이나 손자의 손을 잡고 더 이상 거닐 수 없는 아픔, ‘솔섬’의 몽환적 일출 비경을 이제는 빛바랜 사진속에서나 만날 수 있는 등등의 추억과 향수의 상실이 훨씬 오래가는 아픔일 수 있다. 그 상실을 보듬기 위해 당연한 직접 보상 외에 동반자적 협력과 지원이 후행(後行) 영역으로 오래도록 더해져야 하는 것이다.

1854년, 인디언 부족의 지도자 ‘시애틀’ 추장은 미국 정부의 백인 대표들이 땅(현재의 시애틀)을 팔고, 보호구역으로 이주할 것을 강요하자 “빛나는 솔잎, 모래 언덕, 어두운 숲 속에 걸려있는 안개, 노래하는 온갖 벌레들 등 이 땅의 모든 것이 우리의 기억과 경험 속에서 거룩하다”며 “그런 대지가 어떻게 거래의 대상이 될 수 있냐”고 반문하는 요지의 명연설을 남겼다. 이 연설은 나중에 환경론적 접근을 통해 일부 윤색됐다는 주장도 있지만, 인간의 편의와 욕망을 위해 환경을 궁지로 몰아넣던 산업화 개발시대에 자연과 인간이 한몸이라는 일체의 인식을 일깨우면서 큰 울림을 준 웅변이라는 위상은 지금도 흔들리지 않는다.

결국 땅을 넘기게 된 추장이 백인들에게 한 말은 “우리가 사랑했듯이 온 힘을 다해 이 땅을 살펴달라”는 것이었다. 추장의 입을 빌려 국책사업자들에게 현대적 시각으로 요구한다. “옛 이야기 지줄대는 추억의 공간을 공익적 필요에 의해 가져가는 대신, 진정 동반자적 자세로 주민들의 삶과 환경을 살피는 또 다른 ‘공익’에 힘써 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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