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현철

원불교 간성교당 교무

시간과 공간속에 머무는 우리들은 나라는 존재의 의식과 살고자하는 생명이라고 하는 본능에 따라 이 세상을 살아간다.

우리 사는 세상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이란, 소유의 집착과 착각의 오류에서 끊임없는 욕망의 불꽃 속에 변함없이 질주하고 있다. 목적도 이상도 실체가 없는 허상과 같은 헛된 망상 속에 말이다. 모두가 원하고 바라는 것이 물질적인 풍요와 향락이 마치 시대적 갑이라고 하는 가진 자의 상징인 듯 착각에서 벗어날 줄 모른다. 진정한 갑도 을도 이 시대를 함께 살아 가야할 형제임을 잊은 채 말이다. 여행자임을 잊지 않고 간다면 갑도 을도 부질없는 하룻밤 꿈과 같음을 알아차릴 수 있다.

이번 주에는 익산 원불교중앙총부에 갈 일이 있어서 차를 몰고 가게 되었다. 가는 길과 가고자 하는 목적지를 잘 알고 있지만 혹하는 마음에 차량에 구비되어 있는 내비게이션에 원불교중앙총부를 찍고 운전을 하였다. 그런데 목적지 도착하기 전 10분전에 내비게이션이 이상한 곳으로 안내를 하고 있었다. 순간 어! 내비게이션에 등록되어 있는 주소나 정보가 잘못 인식되었나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길을 잘 알고 있던 터라 내비게이션이 가리키는 방향에 휘둘리지 않고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내비게이션의 오류가 운전자인 내 자신이 길을 모르거나 지난날 가보지 않았다면 틀림없이 길을 헤매게 되었을 것이다. 목적지를 안다는 것은 체험과 경험이라고 하는 충격과 스트레스 애씀이라고 하는 시간을 거쳐 왔기에 가능한 것이다.

여행자임을 안다는 것은 체험과 경험을 소중한 자산으로 삼는 것이다. 길가는 나그네가 무얼 그리 챙기고 집착하겠는가. 가고자 하는 곳이 정처 없지만 산과 들의 풀뿌리 민들레향기를 맡으며 가는 것이다. 현 시대의 착각과 오류는 은혜와 사랑의 작은 민들레 향기가 진정한 행복임을 잊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목적의 상실과 상대적 차별과 빈곤에 가로막힌 두려움이 이 시대의 건너지 못할 장벽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누가 질풍노도의 시기를 청소년기의 방황이라 하던가. 시대의 흐름이 풍전등화와 같이 위태롭다. 그대 여행자임을 잊지 말자는 내면의 울림이 요즘 들어 느껴지는 감상이다. 유명화가의 명화에 느껴지는 고독과 환희는 이 시대를 살다간 여행자임을 잊지 말라는 무언의 소리임을 느낄 때가 많다. 경매 초 고가를 자랑하는 명화도 작가 생존 시 유명세와는 달리 입에 풀칠조차 하지 못한 궁핍함속에 순수적 가치만은 놓치지 않고 명화에 녹아 살아 있음을 느낀다. 작가의 순수적 가치가 물질적 욕망과 덧없음의 덧칠이었다면 낙서장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은 괴팍하리 만치 세상의 흐름에 동화되거나 변질되지 않은 순수적 영혼의 가치를 담고 있기 때문은 아닌지.

그대, 잠시 이 땅 지구별에 머무는 여행자임을 잊지 말자. 속박도 구속도 외로움도 마음먹기에 따라 달라지듯 머무는 동안 서로에게 그리움과 보고픔에 가슴저며오는 명화 같은 사람으로 살아가자. 여행 떠나는 전날 설레는 마음으로 오늘 하루하루를 갈길 꼼꼼히 가볍게 훌훌 털어 버리고 떠나가는 여행자임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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