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암 류인석 선생 순국 100주년에 부쳐

▲ 허남우

문화부장

올해는 일제의 침탈로 나라가 위태로울 때 항일구국투쟁에 한 평생을 바친 의암 류인석 선생이 순국하신지 100년이 되는 뜻 깊은 해이다.의암 류인석 선생은 1842년 1월 27일(양력 3월 8일) 춘천시 남면 가정리에서 태어나 조선후기를 대표하는 화서 이항로 선생의 제자로 학문연구에 정진한 대학자였다.

1866년 병인양오가 일어나자 화서 선생과 함께 외적을 무력으로 물리쳐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1876년에는 문하(門下)의 유생들을 이끌고 병자조약을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으며, 화서학파의 학통을 계승한 종장(후계자)이 되어 수많은 제자를 양성했다.

일제의 만행이 심화되자 선생은 국가와 민족이 어려울 때 선비가 해야 할 일은 첫째 의병을 일으켜 나라의 원수를 소탕하고, 둘째 해외로 나가 우리의 전통문화를 지키며, 셋째 자결하여 목숨을 나라에 바치는 것이라며 의병활동을 시작했다.

1896년 2월 7일(음력 1895년 12월 24일) 영월에서 호좌의병대장으로 3000여명의 의병을 지휘하여 영월, 제천, 충주를 점령하고 친일군수 등을 처단하는 성과를 올렸다. 이후 적군의 반격으로 충주를 빼앗기고 제천에서 패했으나 굴하지 않고 중국으로 건너나 만주지역인 오도구, 팔왕동에 의병기지를 건설하고 의병을 양성하는 활동에 주력했다.

1900년 중국에서 ‘의화단난’이 발생하자 귀국한 의암은 평산, 춘천, 제천 등에서 교육에 헌신하며 항일투쟁을 벌이다 1908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망명, 의병조직을 강화하고 강철 같은 정신으로 왜적을 물리치자고 호소했다.

1910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이범윤, 이남기, 우병렬, 안창호, 홍범도, 이상설 등과 13도의군(十三道義軍)을 창설하여 도총재(都總裁)에 추대되었다.

일제가 조선을 합병한다는 소식을 듣고 성명회를 조직하여 일제의 조선합병은 불법·무효라는 성명서를 미국, 영국 등에 보내 일제의 만행을 규탄하다 1914년 러시아에서 중국으로 이동했다.

선생은 오로지 국가와 민족을 위해 헌신하다 조국의 독립을 보지 못하고 1915년 3월14일(음력 1월 29일) 74세를 일기로 이국땅에서 대학자요 의병장으로서의 생을 마감했다. 그후 1935년 선생의 유해를 고향인 춘천시 가정리로 이장했다. 1962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고 묘역을 강원도기념물 제74호로 지정해 유적지를 성역화하고 있다.

춘천시와 춘천문화원은 올해 의암 류인석 선생 순국 100주년 기념행사를 대대적으로 벌인다. 기념행사로는 오는 19일 향음례를 시작으로 순국 100주년 기념 의암제와 강원도, 강원도민일보, 의암선생기념사업회가 주관하는 의암대상 시상식(6월 1일), 국제학술대회 등이 이어진다.

시민체험행사는 선양강연회, 충의현장투어, 해외 항일의병 유적지탐방이, 기념물사업은 어록비, 도록 제작, 전시행사로는 의병과 독립운동 사진전 등이 열린다.

춘천시는 이들 기념사업 외에도 유적지 일대를 전국적인 현충 명소로 높이기 위해 사적지 지정도 추진한다. 국가보훈처도 최근 의암 선생 생가 복원과 의병훈련장 조성에 적극 지원하기로 해 선생의 독립정신을 재조명하고 선양할 것으로 기대된다.

의암 선생 순국 100주년 기념사업이 전 도민의 관심속에 성공리에 열려 선생의 나라사랑 겨레사랑 정신이 후세에까지 길이 전해지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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