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성헌

한국DMZ평화생명동산 이사장

지난 6월은 한·일 협정체결 50년이 되는 달이었다.

51년 전, 굴욕적인 한·일 협정체결에 반대하는 시위(6·3 운동)를 계엄령으로 금압했고, 50년 전에도 위수령을 발동했다. 50년 전에도 남북은 갈라져 있어 우리 한반도 남쪽은 해양세력, 북쪽은 대륙세력의 영향으로 우리의 자율공간은 무척 좁았다. 그때는 미-일-한의 강력한 포위망으로 소련을 겨냥했기에 한·일 협정은 미국의 필요와 지지와 독려가 있었고, 박정희 정부는 이른바 대일 청구권이라는 ‘돈’이 필요했다.

50년이 지난 오늘은 똑같이 미-일-한의 강력한 포위망으로 중국을 겨냥하고 있기에 새로운 한·일 관계는 아마도 ‘군사력’이 중요한 매개변수가 될 것이고 여기에 대한 미-일의 관심은 매우 높고 구체적인 것 같다.

‘미국을 믿지 말고 소련에 속지 말고 일본이 일어나니 조선사람 조심하자’

해방이 되고 우리 민중이 자주 쓰던 말이다. 요새는 여기에 하나를 더 넣어야 할 것 같다. ‘중국에 중독되지 말고’라는 말이다. 미국 소련(현 러시아) 일본 중국에 대해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은 오랫동안 외세를 겪어본 민중의 경험이고 지혜이다. 19세기말 친청과 친러파, 친미파, 친일파 이런 것으로는 사태의 해결은커녕 나라를 망친 것을 직접 보았던 민중의 혜안이다. 그러나 결정적인 것이 덜 강조된 것 같다. 외세의 동향을 잘보고 조선사람 조심하자는 것은 맞다. 그런데 이는 소극적이고 방어적이다.

우리는 스스로의 힘을 키워 소위 4대 강국을 요리는 못한다 해도 4대 강국과 친교를 맺고 우리에게 함부로 못하도록 해야 하는 적극성과 능동성, 개방성이 중요하다.

우리는 강대국이 아니라 선진국이 돼야 한다. 지금처럼 외형을 중시하고 재벌과 대기업중심, 거대 양당제와 강대 대통령제 가지고는 시민의 자발성, 창의성이 제대로 분출되지 않는다. 작은 것을 중시하고 보이지 않는 것을 잘 봐야 눈이 커진다.

우리는 통일된 새로운 문명국을 지향한다. 그 깃발은 생명·평화·문화이다.

우리가 자신감을 가지고 4대강국과 생명평화문화를 나누며 또는 선도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내부실력’이다. 똑같이 중요한 것은 외세가 강요한 분단체제를 스스로의 힘으로 극복하는 것이다. 남과 북이 계속 대결하는 것은 누가 뭐라 하든 ‘최고로 어리석은 짓’이다. 남북관계를 제대로 열어야 미·일·중·러가 우리를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 통일 또는 통일에 준하는 대동세상을 만들어야 동북아 평화가 가능해진다.

내일의 한·일 관계는 미-일-한의 강력한 포위망 개념이 아니라 동북아 평화공동체와 동북아 생명(생태)공동체의 강력한 연대 틀로 새로 짜야 할 것이다.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남북한이 함께 동북아 평화생명공동체의 청사진을 만들고 이룩해 나아가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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