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궁 창성

서울본부 취재국장

러시아는 철도의 나라다. 유라시아 친선특급 원정대가 이동중인 시베리아횡단철도(TSR)를 포함해 8만5292km의 철도를 운영하고 있다. 지구를 2바퀴 이상 돌 수 있는 거리다. 물류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압도적이다. 여객의 39.0%, 화물의 85.3%를 점유하고 있다. 이용객은 연 9억5000만명에 이른다. 러시아 국민들에게 철도는 생활 자체다. 15일 블라디보스토크를 출발해 하바롭스크를 거쳐 19일 도착한 이르쿠츠크까지 5일간의 4107km 여정동안 유럽에서 연해주로 향하는 열차를 5분 단위로 만났다. 화차를 수십개씩 물리고 500m 이상의 긴 꼬리를 흔들며 자작나무의 사열을 받으면서 대초원을 달리는 모습은 그림이다. 러시아 철도는 한반도의 77배, 유라시아 대륙의 40%를 차지하는 거대한 땅을 동서로 이어주며, 하나의 나라로 묶어주는 시스템이다. TSR은 러시아를 넘어 동북아와 유럽을 하나로 통합하는 철의 실크로드다.

대륙철도는 우리에게도 친숙했다. ‘시베리아를 지나는데 일주일이 걸렸다. 어떤 날은 종일 보리밭 사이를 달리다가도, 어떤 날은 호수를 끼고 한없이 달리기도 했다. 다른 열차와 만날 때마다 우리가 탄 기차는 역 구내에서 기다렸다 달리곤 했다. 열차가 서 있는 동안 굳어진 몸도 풀 겸 우리는 가끔 철도를 따라 뛰어보곤 했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손기정 선수가 독일로 가는 여정을 그린 글이다. 그는 배나 비행기가 아니라 부산을 출발한 열차를 타고 압록강을 건너 만주와 시베리아를 횡단해 모스크바에 갔고, 다시 베를린행 열차에 탑승해 올림픽에 출전했다. ‘꿈을 깨어서 창 밖을 바라보니 얼음과 눈에 덮인 바이칼호 위에는 새벽의 겨울 달이 비치어 있었소. 저 멀리 검 푸르게 보이는 것이 채 얼어붙지 아니한 물이겠지요.’ 춘원 이광수의 소설 ‘유정’의 한 대목이다. 그는 23살 세계 여행을 위해 재직중이던 오산중을 떠나 1913년 러시아행 대륙열차에 몸을 실었다.

분단 70년은 철도도 끊어놨다. 북한과 단절되면서 우리는 한세기 가까이 대륙을 잊고 살아왔다. 섬이 아닌 섬 나라로 배를 타거나 비행기를 타고 러시아와 중국을 오간다. 지난 14일 원정대를 태운 전세기도 인천공항을 이륙해 서해 상공에서 오른쪽의 북녘땅을 저멀리 바라보며 북상해 중국의 단둥과 창춘 상공을 지나 블라디보스토크에 착륙했다. 동행한 최연혜 한국철도공사 사장은 남북철도가 연결돼 새마을호 열차를 타면 5시간에 올 수 있는 거리를 내 나라, 내 땅을 놔두고 남의 나라, 남의 하늘로 왔다며 안타까워 했다. 우수리스크 수이푼강변에 자리한 이상설 선생 유허비에 큰 절을 올린 이준 열사의 외증손자인 조근송씨는 완전한 독립과 온전한 광복을 이루지 못한 현실 앞에, 후손으로서 선생에게 뵐 면목이 없고 죄송하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유라시아 친선특급은 3칸의 열차를 물리고 동서대륙 1만4400km를 횡단하고 있다. ‘소통과 협력’, ‘미래와 창조’ 그리고 ‘평화와 화합’이라는 아주 특별한 열차다. 10대 1의 국민공모를 통해 참여한 각계각층의 원정대가 꾸려가는 친선특급은 냉전과 대결의 굴레를 벗어 던지고 소통하고 협력하는 길을, 우리의 DNA에 잠 들어 있는 대륙의 꿈을 흔들어 미래를 도모하고 창조하는 길을 묻고 있다. 그리고 70년동안 끊어졌던 남북철도를 연결해 평화와 화합을 되찾는 길, 동북아와 유럽이 하나가 되는 통합의 길을 철의 실크로드에서 발견해 가고 있다. 2015 유라시아 친선특급은 남북한과 동서대륙의 꿈과 희망을 가꿔가며 최종 목적지인 독일 통일의 상징, 브란덴부르크문을 향해 지금도 달리고 있다.

모스크바행 시베리아횡단철도에서/남궁창성 cometsp@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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