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궁창성

서울본부 취재국장

유라시아 친선특급은 26일 오전(이하 현지시간) 제1차 목적지인 모스크바의 야로슬라브스키역에 도착했다. 지난 14일 서울역에서 발대식을 갖고 이튿날 블라디보스토크역을 출발한 시베리아 횡단열차에 올라 12일간 장장 9288km를 달려왔다. 두개의 대륙을 동에서 서로 횡단하며 원정대는 항일투쟁의 성지, 우수리스크에서 이상설 선생 유허비에 헌화했다. 검은 아무르강이 유유히 흐르는 하바롭스크에서는 한·러 친선 컨서트를 통해 우의를 다졌다. 바이칼의 도시, 이르쿠츠크에서 양국 지도자들은 축구로 하나가 됐고, 대학생들은 꿈을 나누며 미래의 만남을 기약했다. 또 새로운 시베리아라는 노보시비르스크에서 펼쳐진 문화마당을 통해 양국은 서로를 좀 더 이해했고, 철도 세미나에서는 한반도종단철도와 시베리아횡단철도의 연계방안을 협의했다. 모스크바를 앞두고 원정대는 예카테린부르크에 정차해 우랄산맥의 유라시아 분기점에 서울로 가는 이정표를 세웠다.

이번 여정은 우리의 역사를 뒤돌아 보는 과거로 가는 여행이다. 1864년 학정에 시달린 나머지 두만강을 넘어 남의 나라에 생존을 의탁해야 했던 고려인과 1937년 스탈린 치하에서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 당했던 카레이스키의 역사를 공부했다. 또 선열들이 피로 써내려 간 항일운동의 현장을 찾아 고개를 숙였다. 이번 여정은 우리의 좌표를 돌아보고 확인하는 현재와 대화하는 여행이다. 서울을 떠나 블라디보스토크로 향하면서 내 땅과 우리 하늘을 놔두고, 국토의 절반인 북녘을 피해 남의 땅과 남의 하늘로 와야하는 분단현실을 재확인했다. 또 끝없이 펼쳐진 시베리아의 대초원을 지나면서는 우리와 러시아가 장점을 보완, 발전시켜 공영할 수 있다는 러시아 학자의 ‘공생 정부론’을 생각하기도 했다. 이번 여정은 우리의 나아갈 길을 모색하는 미래로 가는 여행이다. 한·러 지도자와 청년들이 만나 남북통일을 이야기하고, 아시아와 유럽의 통합을 논의했다. 그리고 국제사회의 중추적 일원으로서 역할과 책임을 말했다.

유라시아 친선특급은 지난 여정동안 우리의 과거와 현재를 성찰하고, 미래를 조망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하지만 남북통일과 유라시아 통합, 한반도종단철도와 시베리아횡단철도의 연계를 논의하면서 정작 북한이 빠져 있다는 사실은 ‘불편한 진실’이다. 통일과정에서 러시아, 미국, 중국, 일본 등 한반도를 둘러싼 열강들이 휘두를 영향력은 위협적이다. 그래도 제1의 대화 상대는 북한이다. 철도연계도 러시아와 중국이 파트너지만 북한이 불참한 철도 이야기는 공허하다. 이벤트성 남북철도 복원의 초라한 결과는 경의선과 동해북부선의 녹슨 철도가 웅변하고 있다. 문제는 다시 북한일 수 밖에 없고, 북한이어야 한다. 통일과 통합을 찾아 나섰던 친선특급의 종착역인 독일의 브란덴부르크문은 따라서 우리의 ‘잃어버린 고리(Missing Link)’를 찾아 나서는 시발역이 되어야 한다.

이번 여정은 아주 특별한 손님 2명이 동행하고 있다. 한 사람은 북선의 출발점인 블라디보스토크역에서 탑승한 미국국적의 이병무 평양 과학기술대 치과대학원장이다. 또 다른 한 사람은 남선의 출발점인 베이징 남역에서 탑승한 독일국적의 얀 야노프스키 북한주재 독일대사관 2등 서기관이다. 남선과 북선이 하나가 된 이르쿠츠크에서 만난 두 사람은 북한이 빠져있는 친선특급에 기꺼이 동승한 평양사람들이다. 그래서 두 분들은 등돌린 남북에게 ‘잃어버린 고리’를 찾게해 줄 안내자들이다. 바이칼 호수를 마주하고 대화를 나눈 얀 야노프스키 서기관, 자작나무 숲길을 산책하며 한동안 서로의 생각을 공유했던 이병무 교수. 이 분들은 시종 절제된 화법으로, 엄선된 단어를 사용했지만 서울에서 온 기자에게 하나같이 전해준 조언은 “어떠한 정세에도 남북은 만나, 대화하면서 신뢰를 쌓고, 다음 단계로 점진적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평범한 진리였다. 머나먼 길을 마감하며, 결국 우리의 길은 우리에게 있다는 믿음이 울림으로 다가왔다.

러시아 모스크바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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