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하은 경기 고양예고 1년

 

귀가 고장난 조율사처럼 눈은 내린다

먼지 쌓인 창문 틈으로 녹는 타인의 온기

요란하게도 쌓이는데 온 세상은 귀 먹은 베토벤처럼 적막하다

나는 따개비같은 집에서 입을 오므린 채 목욕을 한다 뜨고 부푼 실밥이 가득한 옷들을 한 장씩 벗어두고

시린 타일에 올라탄다 머리가 무거워 늘 한쪽으로 기울어진 샤워기로 구부정한 물을 맞는다 새 비누 곽을 뜯어낼 때마다

내 알몸을 훔쳐보러 온 불순한 손님 같아 나는 경악했다

비누와 빈말을 나누며 몸에 서툴게 비누칠을 한다 비누는 배곯은 고양이 같은 낯빛을 잘도 했다

나는 사소한 손톱 자국에도 미안해졌다

온몸의 거품은 불면을 옹호하는 신도처럼 자리를 잡지 못하고 뒤척였다 습한 천장에서는 누군가의 울음이 떨어진다

그 불편한 리듬에 허연 목을 내밀고 같이 울었다 거품들은 한시에 같이 죽는다

눅눅한 거품자국들이 팔 언저리에 죽은 물고기 떼처럼 얹혀있다

도수 높은 안경을 쓴 듯 세상은 희미한 밥물같이 보였다

이 근원없는 공간에 인위적인 향이 가득 찬다 창문 밖 스미지 않은 것들이 내 등허리에 내린다

알몸으로 설원을 내달리고 싶다는 생각

그래서 나는 앉은뱅이 의자에 꼽추처럼 앉아 첫 소절만 아는 노래를 불렀다

나는 다 닳아 거품을 문 비누로

목덜미 같은 곳을 문지를 때마다

옛 연인의 입술 언저리에서 넘어졌다

거품들은 죽다가도 축축한 손으로 악수를 청했다

나는 흰 손수건을 들고 곰팡이 핀 타일 위에 비누인 척 누웠다

얼마만큼 눈이 녹아야 비누가 떠나갈지 나는 가늠할 수 없었다

내 몸에는 단지 물이 살지 않았고

금이 간 거울에는 뜨거운 안개가 차올랐다

비누는 내 손을 탈 때마다 낯설어지고

밖에는 간판들이 전부 하얗게 질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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