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궁창성

서울본부 취재국장

2013년2월25일 오전9시20분 국회 대정원.대통령 취임을 축하하는 예포 발사에 이어 박근혜 대통령이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취임사를 읽어내려 갔다.“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저는 오늘 대한민국의 제18대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희망의 새 시대를 열겠다는 각오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저는 깨끗하고 투명하고 유능한 정부를 반드시 만들어서 국민 여러분의 신뢰를 얻겠습니다.정부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씻어내고 신뢰의 자본을 쌓겠습니다.국민 여러분께서도 각자의 위치에서 자신뿐만 아니라 공동의 이익을 위해 같이 힘을 모아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책임과 배려가 넘치는 사회를 만들어 간다면 우리 모두가 꿈꾸는 국민행복의 새 시대를 반드시 만들수 있습니다.우리 국민 모두가 또 한번 새로운 한강의 기적을 일으키는 기적의 주인공이 될 수 있도록 힘을 합쳐 국민행복, 희망의 새 시대를 만들어 갑시다”

아~.그 때는 그 말에 가슴이 뛰었다.벌써 3년8개월 전의 빛바랜 흑백 사진속 일화가 됐다.지난 4일 오전 10시30분 청와대 기자회견장.단상 정면에서 기자들이 숨을 죽여가며 대통령의 입장을 기다렸다.잠시후 회견장에 들어선 대통령의 작은 입이 떨렸다.“먼저 최순실 씨 관련 사건으로 이루 말할 수 없는 큰 실망과 염려를 끼쳐드린 점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저를 믿고 국정을 맡겨주신 국민 여러분께 돌이키기 힘든 마음의 상처를 드려서 너무나 가슴이 아픕니다.모든 사태는 모두 저의 잘못이고 저의 불찰로 일어난 일입니다.필요하다면 저 역시 검찰 조사에 성실하게 임할 각오이며 특별검사에 의한 수사까지도 수용하겠습니다.무엇으로도 국민들의 마음을 달래드리기 어렵다는 생각을 하면 내가 이러려고 대통령을 했나 하는 자괴감이 들 정도로 괴롭기만 합니다.국민의 마음을 아프지 않게 해 드리겠다는 각오로 노력해 왔는데 정반대의 결과를 낳게 되어 가슴이 찢어지는 느낌입니다”

대반전의 비극이다.지난 5일 밤에는 서울 광화문광장을 비롯한 전국에서 국민 20만명이 길거리로 쏟아져 나와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과 하야를 요구했다.국정농단이 양파껍질처럼 벗겨지며 ‘몸통’ 최순실이 구속됐다.청와대 앉아 국민과 국가의 이름을 더럽히며 최순실의 ‘종범’을 자처했던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도 구속됐다.대통령 연설문과 국가 기밀문서를 최순실에게 통째로 넘겼던 문고리 권력 3인방의 하나인 정호성 전 부속비서관 역시 구속됐다.국민이 위임한 공권력을 사유화하며 대통령의 눈을 가리고 귀를 막으며 호가호위했다는 비판을 받아온 우병우 전 민정수석도 검찰에 소환됐다.정부 수립후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역대급’ 국정농단에 국민들은 ‘우리가 이러려고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뽑았냐’고 자탄한다.또 ‘박근혜 정부’라고 쓰고 ‘최순실 정부’라고 읽어야 하는 배신감에 온몸을 떨고 있다.

제왕적 대통령제와 고장난 참모 시스템이 자초한 대형 참사는 5년마다 반복되고 있다.이승만,박정희,전두환,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에 이어 박근혜 정부에 이르기까지 예외가 없다.1987년 체제를 극복하고 지난 30년 동안의 사회 변화를 담아낼 수 있는 2017년 체제의 기틀을 새로 구축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무소불위(無所不爲)의 대통령이 절대부패(絶對腐敗)할 수 밖에 없는 구체제(앙시앵 레짐)를 혁파해야 한다.매일 아침 최순실 국정농단을 지켜보며 매일 밤 ‘대한민국은 과연 민주공화국인가.대한민국의 주권은 정말 국민에게 있는가.모든 권력은 진정 국민으로부터 나오고 있는가’를 자문한다.그리고 이제는 나라를 다시 세울 때라고 자답한다.제2의 박근혜, 제2의 최순실을 막기 위해 시민사회와 정치권은 개헌에서 길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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