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수

▲ 정인수 수요포럼 회장, 전 도의원

박근혜 대통령의 두 번에 걸친 대국민 사과에도 불구하고 지난 주말인 4일, 30만 인파가 모여 촛불시위를 벌였다.전날 있었던 박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에도 아랑곳 하지 않은 국민적 분노와 함성이었다.이어 전국적으로 대통령의 하야(下野)를 촉구하는 시국선언과 집회가 열리고 있다.그리고 이번 주말 박 대통령의 실정을 규탄하는 대국민집회가 계획되어 정국은 블랙홀에 빠져드는 느낌을 떨쳐 버릴 수 없다.새누리당 텃밭인 강릉에서도,경남 지역에서도,경북 봉화군농민회에서도,경주시민행동에서도,부산에서도,대구에서도 조차 전국 대학교에서도 교수들이 비선실세 국정농단과 실정에 대한 책임을 지고 대통령은 하야하라고 촉구하고 나섰다.

심지어는 중고교 학생들까지 시위에 나서는가 하면 유튜브에 시국선언을 공개하는 학생들이 늘어가는 현실이 계속되고 있다.하야란 대통령 권력 지위에서 물러나라는 것이다.

필자는 문득 1960년대 이승만 정권의 전철을 되밟는 역사의 아이러니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당시 이승만 자유당정권은 3·15 부정선거에서 촉발된 장기집권에 염증을 느낀 민중들은 거세게 이승만의 하야를 요구했다.권력의 앞잡이인 경찰의 무차별 발포에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그러나 4월11일 김주열 학생의 시신이 마산 앞바다 수면에 떠오른 것이 기폭제가 되어 수만 명의 시위대가 대통령 관저인 경무대로 향했다.이때 또 경찰의 총격에 무고한 희생자가 나왔다.그래도 대통령 이승만은 권좌에서 버텼다.4월28일 부통령인 이기붕 일가는 육군 소위였던 장남 이강석(이승만의 양자)이 쏜 권총에 모두 살해당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터졌다.권력에 집착했던 더 이상 버틸 수 없음을 알고 이승만은 비로소 다음날 극비리에 하와이로 망명하였다. 이때 이승만의 나이는 85세였다.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가 말 한 대로 “역사는 반복하는 것인가”.다시 우리는 대통령의 하야를 외치고 있다.오늘날 이러한 사태를 유발한 책임은 오로지 박대통령의 무능과 무지, 민주주의에 대한 몰이해가 근본 원인이라고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비선실세라고 부르는 한국판 라스푸틴 최태민의 딸 최순실 일당의 국정농단을 묵인하거나 비호한 사람은 바로 박대통령이다.최순실이 간여하는 미르와 K스포츠라는 급조된 단체에 노골적으로 대기업으로부터 헌금을 요구한 사람이 바로 대통령이라는 개연성이 높아졌다.최순실을 구중궁궐 청와대에 무상출입을 허용하면서 장차관 및 요직부서 인사에 간여하거나 대외비 기밀문서를 열람 또는 수정,접촉을 허용한 사람도 그리고 이들 패밀리에게 많은 국가 예산을 지원한 최종 책임도 박대통령이라 할 것이다.

연일 최순실 일당이 저지른 권력남용과 비행이 판도라상자처럼 터져 나오고 총재로 있는 새누리당에서 탈당을 요구하는 고립무원의 시점에서 대통령의 책임 있는 결단이 요구된다.이러한 상황을 초래한 것은 박대통령의 자승자박(自繩自縛)의 산물이다.총체적인 국가 위기상황과 산적한 현안해결을 위하여 그리고 책임을 통감하는 한 정치인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사실상 퇴진이 초읽기에 들어간 상황에서 박대통령은 하루 빨리 하야해야 마땅하다.이것은 국민적 공감대이며 함의(含意)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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