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꼬박 일해 170만원… “흘린 땀만큼 대우 받고 싶어”
12시간 강도 높은 노동 불구
시간당 급여 최저임금 ‘빠듯’
의료 폐기물 취급 위험 노출
도내 비정규직 20만명 이상

▲ 비정규직 김영희(58)씨가 춘천시 환경공원 재활용품 선별장에서 쓰레기를 분리하고 있다. 사효진
▲ 비정규직 김영희(58)씨가 춘천시 환경공원 재활용품 선별장에서 쓰레기를 분리하고 있다. 사효진
“제가 흘린 땀만큼 정당한 대우를 받았으면 좋겠어요.”
춘천시 신동면 혈동리에 위치한 A건설에서 위탁 운영 중인 쓰레기 소각장 춘천시환경공원.춘천시내 모든 쓰레기들이 총 집결하는 이곳은 김영희(58)씨의 일터다.김씨는 이곳 재활용 소각장에서 재활용이 가능한 쓰레기를 분리하는 일을 하고 있다.적지 않은 나이에도 밤낮없이 일하지만 그는 좀처럼 의욕이 나질 않는다.그에게 따라붙은 ‘비정규직’이라는 꼬리표 때문이다.김씨는 아침 7시부터 저녁까지 온갖 악취가 진동하는 곳에서 마스크 하나로 버텨가며 일을 하지만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그의 시간 당 급여는 최저임금인 6030원(2016년 기준.2017년 최저임금 6470원)에 불과하다.
휴일,연차 한 번 없이 한 달 꼬박 일해 받은 돈은 170만원 남짓.그마저도 일주일에 두 번 있는 야근을 모두 채웠을 때 가능한 액수다.김씨는 “춘천시내 모든 쓰레기를 정리하는,일종의 공익(公益)을 위한 일인데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최저임금만 받고 있다”며 “나야 애들이 다 커서 몫돈 들어갈 일이 없지만 주변의 40대 가장들은 애들 학원비는 고사하고 가족들 입에 풀칠하기도 빠듯한 금액”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김씨가 처음부터 비정규직이었던 것은 아니다.3년 전만해도 그는 한국과 베트남을 오가며 무역사업을 했다.10여 년 동안 이끌어 온 사업이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하자 그는 모든 일을 정리하고 경치 좋은 춘천에 터를 잡았다.이후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이 곳으로 발을 들인지가 벌써 2년이다.‘비정규직’이라는 이름으로 사는 삶은 녹록지 않았다.하루종일 착용한 마스크가 땀에 절어 숨도 제대로 쉴 수 없는 날이 이어졌으며 12시간에 가까운 강도 높은 노동은 제대로 대우받기 힘들었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안전이다.김씨가 일하는 재활용 소각장에는 반입이 돼서는 안되는 농약이나 의약품들도 섞여있다.변변한 안전장비 없이 목장갑 하나로 쓰레기를 분리하다보면 날카로운 물건에 찔리는 경우는 예삿일이다.최근에는 농약병이 터져 직원 5명이 병원으로 후송되는 일이 일어났으며 김씨도 염산에 화상을 입을 뻔한 아찔한 순간도 있었다.김씨는 “다행히 날이 추워 두꺼운 옷을 입었기 때문에 옷이 타는 정도로 마무리 됐다”며 “반팔티셔츠를 입는 여름에 이런 일이 일어나면 꼼짝없이 다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도내 비정규직은 2016년 8월 기준 23만5000명이다.2016년 3월 20만7000명에 비하면 5개월 사이에 2만8000명이 증가했다.2014년 8월 20만 2000명을 기록한 이후 2015년 3월 19만3000명으로 소폭 하락했다가 그해 8월 22만8000명으로 급증하는 등 최근 3년새 도내 비정규직은 20만명을 훌쩍 넘는 규모를 유지하고 있다.
미래를 보장 받지 못하는 삶,내일을 꿈 꿀 수 없는 삶을 생각할 때마다 김씨의 한숨은 더욱 깊어진다.그는 이 곳에 근무하던 초창기 시절,쉬는시간 마다 목격한 풍경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30대 젊은이들이 쉬는 시간만 되면 30㎏ 짜리 쌀포대를 들어올리며 훈련을 하고 있었다.환경미화원으로 취직하겠다는 꿈 때문이었다.하는 일은 지금 이 곳과 별반 다르지 않지만 환경미화원은 ‘공무원’으로 인정돼 여기보다 처우가 낫다는 것이 젊은 친구들의 생각이었다.김영희씨는 “한창인 친구들이 이곳은 ‘미래가 없다’는 생각에 자꾸 떠나려는 생각을 할 때 마다 마음이 아팠다”며 “힘들고,더럽고,냄새나는 곳이지만 장래가 보장된다는 확신만 있으면 여기서 일하고 싶다는 얘기를 들으면 더 속상하다”고 털어놨다. 지난해 10월,김씨와 비정규 노동자들은 노동의 가치가 인정받는 조직문화를 조성하기 위해 노조를 결성,현재 회사와 투쟁 중이다.최저임금 이상의 임금을 지급하고 근로기준법에 명시된 연차와 휴일을 보장하라는 것이 이들의 요구다.김씨는 “한 달 벌어 한 달 먹고 사는 이들이 월급을 받지 못하면서까지 투쟁하겠다고 하는 것은 그동안의 처우가 얼마나 불합리한 것인지 보여주는 반증”이라고 말했다. ‘설날’이 지나 이제 음력으로도 2017년 새로운 해를 맞았다.김씨의 정유년 소원은 무엇일까.“조합원들의 요구가 받아들여져 열악한 근로조건이 개선됐으면 좋겠어요.이것만 바뀌면 조합원들과 야유회나 한 번 다녀오려고 합니다.올 연 말에는 지금 이 때를 웃으며 추억할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오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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