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영 문화부장

▲ 이수영 문화부장
▲ 이수영 문화부장
‘저리 가거라 뒤태를 보자.이만큼 오너라 앞태를 보자.아장아장 걸어라 걷는 태를 보자.빵긋 웃어라 입속을 보자.아매도 내 사랑아.’
진양조와 중중모리장단에 얹혀 아기자기하게 펼쳐지는 ‘사랑가’.판소리 춘향가의 백미인 사랑가는,끊어질 듯 이어지며 밀었다 당기는 리드미컬한 가락으로 청중의 마음을 쥐었다 놓는다.이몽룡과 춘향의 판소리 속 러브스토리는 점잖지도 근엄하지도 않은 선조들의 솔직한 사랑의 방식을 엿보게 한다.이 노래가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아직도 사랑받는 까닭이다.
시대의 소리꾼 안숙선은 사랑가를 가장 맛들어지게 부르는 판소리계의 거장이다.그의 심청가가 슬프고 드라마틱하다면,사랑가는 장난스러운데다 짓궂기까지 하다.청중의 마음을 읽으며 고저장단을 맞추는 안숙선의 소리는,처음 듣는 사람이라도 마음을 뺏기는 마술 같은 매력이 있다.숨어 있던 우리의 신명과 정서를 소리로 뽑아내는 솜씨가 일품이다.
그리고,또 한 명의 거장이 있다.한국 클래식계의 대명사로 손꼽히는 첼리스트 정명화.동생 정경화와 함께 평창대관령음악제를 이끌고 있는 그는,제네바 국제 음악 콩쿠르에서 동양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첼로 부문에 우승한 이래 세계적인 음악가로 명성을 이어오고 있다.경지에 오른 완숙한 연주는 물 흐르듯 자연스럽지만,그 바탕에는 항상 그만의 음악적 힘과 긴장감이 깔려 있다.
이들 두 사람이 15일 오후 6시 알펜시아 콘서트홀 무대에서 ‘사랑가’로 극적인 만남을 갖는다.클래식과 판소리라는 장르의 벽을 넘어 음악의 고수만이 소화할 수 있는 콜라보레이션 무대를 꾸미는 것이다.15일부터 19일까지 열리는 ‘2017 평창겨울음악제’의 새로운 시도 ‘국악과 클래식의 만남’ 무대가 음악 팬들을 설레게 하는 이유다.‘판소리가 춘향,첼로가 이몽룡이 돼 대화를 주고받는 형식’이라는 음악제 측의 설명은 공연에 대한 관심을 더한다.한복과 부채,첼로와 무대드레스가 주는 시각적인 파격은 관객들의 즐거움을 배가시킬 것이다.
“이번 겨울음악제가 문화올림픽의 시작”이라는 정명화·정경화 예술감독의 말처럼 ‘사랑가’를 통해 올림픽 문화 콘텐츠가 하나 만들어졌다는 기대가 따른다.이미 평창 계촌마을과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호흡을 맞췄던 두 음악인의 무대는 올림픽을 1년 앞두고 세계인들이 모일 공간에서 펼쳐지는 공연이라 더욱 의미가 크다.연주가 멋진 하모니를 이룰지 불협화음이 될지 아직 알 수 없다.그러나 결과를 떠나 실험적인 무대가 시도됐다는 점에서 평가할 만하다.
이 같은 시도에 대해 클래식과 판소리계에서는 다른 시각도 존재할 수 있다.멜로디와 리듬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고전음악과,가락과 장단을 기본으로 전개되는 판소리의 음이 충돌하면서 서로의 음악을 해칠 수 있다는 의견은 물론 존중돼야 한다.실험적인 무대를 꾸미는 음악인들이 세심하게 고려하고 반영해야 할 부분이다.그러나 시도 자체를 금기시하는 보수적인 견해는 자칫 음악 스스로가 가지는 생동감과 개방성을 방해할 수 있다.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 항구를 중심으로 선원들과 주민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던 서민음악 ‘탱고’는 클래식 작곡가 피아졸라에 의해 세계인이 사랑하는 음악으로 변신했다.파헬벨의 고전음악 ‘캐논’은 가야금을 비롯한 다양한 악기를 만나 색다른 매력을 발산한다.
예술의 원형을 유지하려는 노력과는 별도로,우리의 전통음악도 세계의 음악과 만나 부딪치고 또 어우러질 필요가 있다. 우리 음악의 흥과 멋이 세계적으로 보편화하는 길을 활짝 열어야 한다.오케스트라와 대금이 협연을 하고,실내악과 거문고가 화음을 이루는,낯설지만 아름다운 무대가 관객들을 부를 것이다.
그래서 이번 공연이 더욱 주목된다.연주가 끝나고 뜨거운 앙코르 박수가 터져 나올 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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