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집 건너 치킨집·편의점 앞 슈퍼… 매일 피말리는 전쟁
동종업계 ‘제살 깎아먹기’ 경쟁
할인·서비스 확대로 매출 급감
정부, 과밀지역 창업자 대출땐 가산금리·한도 조정 제도 추진
소상공인 “과도한 규제 역효과”
진입 장벽 높이고·고정 지출↑

▲ 경기불황이 심화되면서 도내 자영업자들의 폐업이 급증하고 있는 가운데 22일 춘천 지하상가 일부 가게들의 문이 굳게 닫혀있다. 사효진
▲ 경기불황이 심화되면서 도내 자영업자들의 폐업이 급증하고 있는 가운데 22일 춘천 지하상가 일부 가게들의 문이 굳게 닫혀있다. 사효진
#1 춘천의 한 편의점 운영주 김민호(34)씨는 출혈경쟁에 하루하루가 전쟁이다.인근 50m거리에 다른 편의점이,10m 거리에는 슈퍼마켓이 있다.그 슈퍼 뒷 블럭 20m내에는 또다른 편의점이 자리잡고 있다.그 편의점의 길 건너 20여m에도 편의점이 버티고 있다.김씨의 편의점을 기점으로 100m안에 경쟁점포가 5개나 있다.

#2 강릉에서 제과점 겸 카페를 운영하는 신성욱(40)씨도 인근 경쟁업체 때문에 손님들의 선택을 받아야 하는 경쟁에 내몰렸다.특히 경쟁업체도 ‘제과점 겸 카페’로 영업스타일마저 똑같다.

#3 원주에서 치킨집을 운영하는 이정미(42)씨는 한 블럭안에서 다른 치킨집들과 경쟁하고 있다.같은 치킨이라도 세부 메뉴가 달라 충성고객을 확보했지만 매번 고객을 믿을 수만은 없어 하루하루 피말리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

경기불황으로 벼랑 끝에 선 강원도내 자영업자들이 과도한 출혈경쟁으로 피폐해지고 있다.‘한집 건너 치킨집’,‘편의점 앞 슈퍼’,‘카페 옆 찻집’이란 말이 무성할 만큼 동일업종들이 한데 몰려 과도한 경쟁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정부가 중재에 나서고 있지만 별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춘천의 한 중화요리 음식점은 지난해부터 짜장면가격을 5500원에서 5000원으로 내렸다.같은 배달권역에 있는 중식당이 그만큼 정가를 낮추자 경쟁심리상 함께 가격을 내리게 됐다.그 결과 작년초 840만원이던 한달 매출이 지난 1월 620만원으로 26.1% 감소했다.횡성의 한 정육식당 된장찌개와 상차림비용은 각각 3000원과 4000원으로 최근 길 건너편 식당이 가격을 인하하면서 1000원씩 값을 내렸다.또 음료수 등 기타 식료품과 반찬류를 서비스로 제공하면서 작년 3600만원대던 월 매출이 올해 초 2900만원대로 내려갔다.
결국 상가 밀집은 임대사업자의 배만 불리는 꼴이 됐다.상가들이 목 좋은 자리를 노리고 서로 들어서려고 경쟁하면서 임대료가 크게 상승하는 등 자영업자들의 고정지출만 늘고 있다.한국감정원에 따르면 2013년 1분기 강릉 중대형상가의 한달 평균 상가 임대료(평균)는 1평(3.3㎡) 당 7만9893원,30평 점포 기준으로 239만6790원이다.3년이 지난 작년 1분기는 1평 당 8만6493원,30평 점포 기준으로 259만3800원으로 8%나 뛰었다.원주도 최근 3년간 중대형상가 월 임대료가 6.9% 올랐다.이는 전체 도심지역 중대형상가의 평균 수치로,상가밀집도가 높은 도심지역의 상가 임대료는 3년간 무려 20%,30% 인상됐다.때문에 도내 자영업자 상당수는 가격인하 등 출혈경쟁으로 매출감소에다 임대료 지출만 늘리는 등 제 살 깎아먹기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이같은 상황이 지속되자 정부는 최근 자영업자들의 동일업종 과밀억제를 위해 동종업계 후발주자에게 경제적 압박을 주는 정책을 내놨다.최근 금융위원회가 은행권과 소상공인(자영업자)간 대출관리를 담은 ‘자영업자 지원 및 대출 관리 강화 계획’을 발표했다.사업성을 고려하지 않은 자영업자들의 대출에 제동을 거는 등 본격적인 관리에 나서겠다는 입장이다.기존 은행의 자영업자 대출시스템은 연체이력,연 매출액 등 실적만 보고 대출 한도와 금리를 확정하는 방식이지만 금융당국은 앞으로 소상공인 시장 진흥공단이 제공하는 과밀업종·지역 선정 기준 등을 참고해 상가 과밀지역의 창업자에게는 대출시 가산금리를 붙이거나 한도를 조정하는 제도를 추진할 방침이다.작년 11월 중소기업청도 과당경쟁이 우려되는 지역·업종에 뛰어든 자영업자를 정책자금 지원 대상에서 배제하거나 가산금리를 적용하겠다는 계획을 밝혔었다. 그러나 소상공인들은 이런 정부 대책이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상가과밀현상을 억제하겠다는 방식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입장이지만 출혈경쟁과 임대료 상승 등 이중고에 시달리는 자영업자에게 진입장벽까지 높이고 대출금과 이자 등 고정지출만 더 늘리게 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도내 전통시장에서 잡화점을 운영하는 김인영(41)씨는 “같은 점포가 계속 생겨나 가격을 깎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월세는 오르고 박리다매도 소용없다”며 “그렇다고 대출규제로 문제를 푸는 것은 자영업자도 구조조정 대상이 된다는 것으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고 말했다.편의점 운영주인 김성호(34)씨도 “창업자들이 아무리 손해를 보면서 밀집지역에 뛰어들어도 나름 기대수익을 계산한 결과가 있기 때문에 움직인 것인데 급하다고 정부가 무작정 대출 등으로 제약하겠다는 것은 과한 규제다”며 “지출이 큰 만큼 벌 수 있는 수익구조를 만들어 주는 게 먼저다”고 지적했다. 신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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