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동열   강릉본사 취재국장
▲ 최동열
강릉본사 취재국장
해 뜨는 도시가 있다.온나라 안에서 가장 먼저 해 뜨는 동쪽 바닷가 도시가 있다.매년 새해 아침에는 ‘해돋이 축제’가 열린다.그냥 동네 축제가 아니라 수십만 인파가 나라안 곳곳에서 몰려드는 매머드급 축제다.그렇게 도시는 사람들에게 해맞이 명소로 알려졌다.

그런데 참 희한한 일이 있다.그 도시는 또한 달과 깊은 인연을 맺었다.달을 머금은 호수와 바다가 사람들을 매혹하면서 도시는 누천년 ‘달의 성지’가 됐다.만월(滿月)이 밤을 노랗게 물들이는 정월대보름과 추석 한가위 즈음에는 ‘달맞이 축제’가 판을 벌인다.휘영청 달빛이 천년 누정에 내려앉아 이 오래된 도시의 옛 이야기를 속삭이는 신비스러운 밤,그 밤을 무심하게 흐르는 시간에 그냥 내줄 수 없어 사람들은 ‘야행(夜行)’이라는 즐길거리를 만들어 유서 깊은 도시의 밤을 깨웠다.

다름 아닌 강릉 얘기다.세상에 해와 달이 이렇게 잘 어우러지는 도시가 또 있을까.강릉은 병립하기 어려울 것 같은 해와 달이 명품 자원으로 공존하는 도시다.

그런데 필자가 주목하는 것은 강릉의 달이다.‘해 뜨는 도시’는 저기 남쪽 부산까지 동해안 도시 어디나 해당될 수도 있지만,‘달의 도시’는 한참 더 특수하다.달빛을 품을 수 있는 자연이 받쳐줘야 하고,그 달빛 아래서 농익은 역사·문화가 넉넉하게 존재해야 한다.

‘달’을 얘기하자면 강릉은 밤새도록 끝이 없다.달이 강릉을 만나 더 특별하고 값진 존재가 됐다고나 할까.경포에 뜨는 다섯개 달을 묻는 ‘국민 퀴즈’에서부터 고래의 무수한 시문에 강릉의 달이 등장한다.경포대는 동해안 최고의 달맞이 명소로 통한다.호수와 바다에 쏟아지는 달빛을 보기 위해 그곳에 경포대가 자리잡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죽도의 달맞이(竹島明月),강문 앞바다 고기잡이 배의 불빛(江門漁火),초당마을의 저녁 밥 짓는 연기(草堂炊煙),시루봉의 저녁 노을(甑峰落照),해질 무렵 한송정의 종소리(寒松暮鐘) 등 달빛 야경과 관계가 깊은 경치들이 경포팔경을 장식하고 있는 것만 봐도 경포와 달의 궁합을 실감할 수 있다.얼마전 작고한 시인 황금찬은 1976년 3월 29일자 동아일보에 경포대를 소개하면서 “벚꽃은 눈보라로 날리고,낙화(落花) 위에 흰달이 쏟아진다”고 봄날 경포호의 진경을 예찬했다.국민가곡 사공의 노래(함호영 시,홍난파 곡)에 등장하는 배가 ‘달 맞으러 강릉 가는 배’인 것도 우연은 아니다.오죽하면 예전 강릉에서 탄생한 소주가 경포호의 달을 뜻하는 ‘경월(鏡月)’이었을까.

때마침,강릉 도심에 새롭게 만들어지는 거리 이름도 남대천 월화정(月花亭) 설화에서 따온 ‘월화거리’로 정해졌다.한자 뜻 그대로는 ‘달꽃 거리’라고나 해야 할까.

이참에 강릉을 ‘달의 도시’로 만들고, 달 마케팅을 펼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경포호의 밤 풍경을 더욱 살리고,올림픽 역인 강릉역과 도심의 월화거리에도 달빛 야경을 한번 제대로 입혀 보자.‘강릉 야행(夜行)’ 프로그램의 판을 키워 역사·문화의 향기가 넘치는 대한민국 대표 밤거리 축제로 만들어보자.그윽한 커피향이 더해지는 강릉항,명주동 거리에서의 달 보기는 또 어떤가.어차피 현대인들은 야행성으로 진화했으니 ‘달의 도시∼강릉’은 관광경제적으로도 매우 매력적인 포석이다.그렇다고 해놓고 보니 달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다산과 풍요를 상징한다.

새벽기차를 타고 정동진에 도착한 관광객들이 일출에 환호하듯이,저물녘 강릉역에 내린 관광객들이 ‘달의 도시’가 들려주는 얘기에 밤늦도록 취하는 풍경,참 흐뭇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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