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투고

배고프던 시절에 비가내리는 날에는 날궂이 음식을 해먹던 일이 생각난다.절기로는 벌써 대서를 훌쩍 넘겨 입추가 되니 가을을 연상하게 되어 더위가 가셔지는 느낌이다.비가 자주 내리는 장마철 농촌에는 전화도 없던 시절이니 가까운 이웃부터 불러서는 날궂이 음식 판을 벌리기로 작당을 해 누구는 감자,누구는 호박,막걸리며 집에 있는 대로 들고 헛간이 널찍한 집으로 모여든다.헛간에 멍석을 깔고 이웃이 둘러앉아 서툴게 부쳐낸 부침개에 곁들이는 막걸리는 쏟아지는 빗소리와 함께 잘도 어울린다.이렇게 해서 이웃 간의 정은 깊어만 가고 이웃사촌이라는 말을 실감하게 한다.

날궂이 회식이 이렇게 어울리고 나면 다음에는 또 다른 핑계의 이웃모임이 이어지고 이웃은 점점 가까운 친척처럼 사회공동체로 묶여간다.그러다가 누군가가 도시화 바람을 타고 이사가 시작됐다.처음에는 이웃사촌을 찾아 서로 방문도 하고 근황도 알아보고 싶어 했지만 날이 가고 해가 바뀌면서 많은 사람들이 여러 이유로 고향을 떠나면서 서로 살기에 바쁘다보니 이웃마저 잊게 됐다.고향이라는 이름이 그리워 살던 곳을 찾아도 대개는 쓸쓸하게 돌아서고 만다.고향이 옛 모습이 아니기 때문이다.새로 지어진 집에는 낯모르는 사람이 살고 있고 옛 정취를 찾을 수 없이 사람도 들판도 낯설어져서다.

도심에 사는 나도 날궂이 음식이 생각이 나 친구에 전화를 건다.“이봐 비가 오는데 자네 집 앞에 그때 그 집이라고 있지.그리로 나와.빈대떡이라도 해서 막걸리 한잔 하세.”

이흥우 시조시인·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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