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석준   춘천지법 기획공보 판사
▲ 이석준
춘천지법 기획공보 판사
모든 법률은 이를 제정한 해당 국가의 역사와 문화 및 사회 양상을 반영한다.이는 형사상 죄를 범한 사람을 처벌하는 근거 법규인 형법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특히 형법에 규정된 도박죄의 처벌대상과 그 법정형은 도박행위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각을 흥미롭게 보여주고 있다.

도박죄를 규정하고 있는 형법 제246조 제1항에 의하면 ‘도박을 한 사람은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고 다만 일시오락 정도에 불과한 경우에는 예외로 한다’라고 하여 일반도박죄를 처벌하고 있고 같은 조 제2항에서는 상습도박죄를 가중처벌하고 있다.또한 형법 제247조에서는 영리의 목적으로 도박 장소를 개설한 사람을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고 있다.외국의 입법례를 살펴보면 미국의 경우 주마다 세부적인 내용은 다르기는 하나 도박은 원칙적으로 합법적인 행위이고,다만 여러 도박행위 중 카지노를 허용하는 주는 많지 않다.프랑스의 경우 형법에서 도박개장죄와 직업적 도박죄만 따로 처벌하고 있으며,오스트리아 형법은 영리 목적으로 도박장을 개설하거나 영업상으로 도박에 관여하는 자만을 처벌하고 있다.영국은 특별법을 통해 도박개장죄를 가중처벌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영업목적이나 직업적인 성격이 아니더라도 도박하는 행위 자체를 원칙적으로 처벌하고 있고 양형도 다른 나라에 비하여 약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외국보다 도박행위를 더욱 엄격하게 규제하는 것으로 보인다.이와 같은 양상은 일견상으로는 도박죄를 원칙적으로 처벌하는 독일,일본의 형법을 우리나라가 받아들였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하지만 역사적으로 볼 때 도박을 엄격하게 처벌하는 이유를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

예로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은 도박을 매우 좋아해 격구,제기차기 심지어 연날리기를 할 때도 물품 또는 돈을 걸고 도박을 했다고 한다.그러다가 조선시대 후기인 18세기에 들어와 투전(鬪錢)이라는 노름이 성행하게 되면서 전국적으로 도박행위가 들불같이 퍼져나갔다.그 폐해는 날로 심해져 백성들이 농사일을 아예 놓을 지경이었고,왕에게 투전으로 인해 사대부 자제들로부터 일반 서민들까지 집과 토지를 팔고 투전 자금을 마련하기 위하여 도적의 무리가 된다는 등의 상소가 빗발칠 정도였다.결국 1895년 갑오개혁을 계기로 조정에서는 투전과 같은 노름을 금지하는 조치를 내리게 됐다.그럼에도 일본에서 화투라는 도박이 들어와 기존 투전 방식을 패용해 그대로 노름행위를 했기 때문에 위와 같은 조치는 유명무실하게 됐다.이렇듯 도박에 대한 폐해,그 위험성에 대한 국가와 일반 시민들의 인식이 역사적으로 강화돼 왔고 현재의 형법상 도박죄의 처벌대상과 형량에는 위와 같은 입법자들의 의사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이와 같이 입법례 혹은 역사적인 연유로 인해 도박행위를 외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강하게 처벌하고 있는 것이 우리 형법의 현재 모습이다.그렇지만 우리 형법은 모든 도박행위를 금지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위에서 기재한바와 같이 형법 제246조 제1항의 일시오락에 불과한 경우에는 도박행위라도 처벌하지 않는다.예를 들어 필자가 맡고 있던 군법원 재판에서 5명의 주민들이 도박죄로 즉결심판에 회부된 적이 있었다.위 5명의 사람들은 동네 선후배 사이로 친분이 돈독했는데 집에서 50회 가량 도박행위를 했다가 신고가 들어온 것이다.심리를 해보니 전체 판돈이 3만원 가량에 지나지 않고 도박죄로 처벌받은 전력도 없었다.필자가 보기에 이는 일시오락의 정도에 불과하다고 판단하고 5명 전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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