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호   사회부장·부국장
▲ 이호
사회부장·부국장
강원도가 보이지 않았다.‘살충제 계란’ 파동을 취재하며 든 생각이다.친환경 인증 농가에서 살충제 계란이 쏟아져 나와 국민적 배신감을 줬지만 검사부터 발표까지 농식품부는 강원도를 외면했다.농식품부 퇴직 관료들의 적폐가 낳은 ‘농피아’ 지적이 나왔지만 강원도는 할수 있는 게 없다.살충제 계란 농가가 발생한 해당 지자체는 더더욱 말해 무얼할까.지금 강원도와 철원군은 농가 2곳의 살충제 계란 수거와 폐기에 열심이다.그야말로 뒤처리만 맡은 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파동 과정과 지금의 대응을 보며 강원도 농정에 실망감이 크다.제도의 문제라고 하겠지만 의지의 문제는 없는 지 반문하고 싶다.하나 예로 들자.살충제 계란 파동이 발생 후 부산시민들은 살충제 성분이 검출된 계란 껍데기에 찍힌 난각기호를 긴급 재난 문자메시지로 받았다.먹지 말고 즉각 반품하라는 안내였다.17개 광역자치단체 중 전남,충남,부산,제주 등 4곳의 주민들에게 문자가 발송됐다.재난 문자 발송 권한이 지난 16일부터 행정안전부에서 시·도로 이양됐고,4곳은 사회적 재난으로 판단해 대응했다.반면 그 시간 강원도민들은 스스로 나서 SNS를 통해 정보를 찾아 헤매야 했다.부산,제주가 4일 뒤 재난문자를 보내 뒷북행정이라는 비난을 샀지만,이마저도 부러워해야할 판이었다.

‘포비아(PHOBIA·공포증)’는 객관적으로 위험하지도 않고 불안하지도 않은 상황이지만 대상을 필사적으로 피하고자 하는 증상을 말한다.정신분석의 창시자인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밝힌 공포증은 일반적이고 막연한 불안이 공격적인 형태를 띠는 불안 히스테리의 일종이다.이때 불안은 특정한 외부 대상이나 상황에 연결된다.결국 사실을 명확히 알면 집단 불안 심리는 단명하는 것이다.최근 확산되는 ‘에그 포비아’도 마찬가지다.막연한 공포 심리가 확산되지 않도록 조기에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지자체가 마땅히 해야할 일이다.위민행정,생활정치는 거창한 아젠다에 있는 게 아니라는 인식의 부재가 드러난다.

앞으로의 정책 비전 제시도 아쉽다.‘위기는 기회를 낳는다’는 상식적인 명제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이번 파동이후 국민들 스스로 만들어내는 ‘소비문화 혁명’에 대응하는 중장기적 정책이 없다.이번 파동으로 국민들은 대기업 브랜드와 저렴한 가격·친환경 인증마크만 보고 구매하던 과거와 달리,자발적으로 농장을 찾거나 비싸더라도 ‘동물복지 축산 농장 인증’을 받은 계란을 사고 있다.계란을 넘어 소와 돼지·닭·오리 등 먹거리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많은 국민들이 SNS에 건강하면서 맛있는 먹거리를 찾아 다른 이들에게 소개하며 소비문화의 혁명의 주체가 되고 있다.

춘천도심 외곽 농촌 들녘에 건물이 덩그러니 있는 한 중소형 마트가 있다.주말 가끔 찾는 이 곳은 집에서 차로 20분쯤 걸려 쇼핑하기엔 좀 멀다.집에서 5분 거리안에 유명 대형 마트들이 즐비하지만 굳이 이곳을 찾는 이유가 있다.지역의 한 단위농협이 운영하는 마트 안 로컬푸드 매장의 농산물은 인근지역 조합원들이 직접 키워 출하한 것이어서 싱싱하고 가격도 저렴해 만족도가 높다.가끔 농사짓던 복장 그대로 와서 토마토 봉지에 가격표를 붙이는 농민을 만나는 것도 신선한 경험이다.실제보다 심리적 거리감이 더해 사람들이 찾지 않을 것 같지만 최근 열린 오픈 1주년 행사에는 북새통을 이룰 정도로 이젠 많이들 찾는다.

이 곳을 올때마다 드는 생각 중 하나가 ‘강원도 경쟁력’이다.전국적인 유통망을 갖춘 대형마트들과의 경쟁에서 소비자의 선택을 받아 살아남은 이 곳에 강원도 농정의 미래가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상념때문이다.지금,‘푸드 포비아’가 불러온 소비문화 혁명를 주목한다면 이미 답을 찾은 현장보다 강원도 농정이 늦어서는 안된다. 이호 사회부장·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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