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동해안 해녀가 사라진다] 3회-제주해녀, 강인한 강원해녀 되다
제주서 출가 후 21살 강릉 정착
미역 채취·농사 등 생계 이어
70대 이상 42%로 노령화 가속
정년없지만 해녀 삶 시작 전무

▲ 해녀 이정숙씨는 고향 제주보다 차가운 주문진 바다에서 60년동안 물질을 했다.젊은 시절 바다는 돈을 벌게 해줬고,지금 바다는 건강을 지켜주고 있다.
▲ 해녀 이정숙씨는 고향 제주보다 차가운 주문진 바다에서 60년동안 물질을 했다.젊은 시절 바다는 돈을 벌게 해줬고,지금 바다는 건강을 지켜주고 있다.

“서귀포 알지? 안덕면 대평리가 내 고향이야.” 강릉 주문진에서 만난 이정숙 할머니는 81세로 60여년 바다를 누빈 제주출신 해녀다.그녀는 물질과 농사로 슬하에 4녀를 대학공부까지 시키며 자랑스럽게 키웠다.벽에 걸린 가족사진을 보니 그녀는 강인한 어머니의 표본이었다.“서귀포에 살다가 21살 무렵 강원도 삼척에 미역작업을 하게 됐어.삼척미역이 새카맣고 품질이 좋아서 비쌀 때라 출가물질로 돈벌이 하기에는 괜찮았지.삼척서 미역작업하고 제주로 돌아가는 길에 경상도에 들러 천초 채취도 하고….”

지금 해녀들이 입는 고무옷은 그 당시에는 없어 어려움이 많았다고 한다.1970년대 들어서야 고무옷을 입기 시작했다.현재 고무옷의 겉감은 고무재질을 덧입힌 것이고 안감은 네오프린(neoprene)의 고무제품으로 돼있다.가슴까지 올라오는 바지형태의 하의와 목까지 감싸주는 상의로 이뤄졌다.여기에 같은 재질의 모자와 장갑, 버선, 커다란 단안 수경,오리발을 착용하면 물질 복장이 갖춰진다.잠수를 잘하기 위해 4~6kg 납을 허리에 차고 껌과 솜을 같이 씹어 귀마개를 만들어 끼우면 완벽해진다.“처음에는 속곳만 입고 물질했지.음력 2월 미역 채취할 때 강원도 바닷물은 제주에 비해 엄청 차가운 편이라.얼마나 차가운지 10분 작업하고 물속에서 나오면 온다리가 새빨게지고 손이 곱아서 잘 움직이지도 못했다니까.그런데 요즘은 여기 앞바다도 물이 많이 따뜻해졌어.고무옷 입고 들어가서 그런게 아니라 물 속에 해파리가 나타나는 걸 보면 따뜻해진게 맞구나 하지.”

해녀를 저승의 돈 벌어 이승에서 쓰는 여인들이라고 한다.한없이 너그러운 바다는 종종 해녀들을 위협하기도 한다.“파도가 잔잔해서 물질을 나갔는데 갑자기 큰파도가 몰려올 때가 있어.아주 갑자기 말이야.그럴 때는 온동네 사람들이 배를 타고 나와서 해녀들을 구하기도 하지.뭐니뭐니해도 그런 파도들이 제일 무섭지.또 언제 한번은 해녀들이 물질하는데 배가 그걸 미처 못보고 지나가서 해녀 하나가 허벅지를 다쳐 피를 흘리고 온바다가 난리였지.배가 지나가는게 위험해.그래서 우리가 갖고 다니는 두렁박을 하얀색이 아니라 주황색 등 눈에 잘 띄는 걸로 하는거야.하얀색이면 어선들이 놔둔 그물표시랑 구분이 잘 안되거든.”

해녀들의 대부분은 물질만 하지 않는다고 한다.바다와 육지에서 이중적 경제활동을 하고 있다.일년 내내 물때가 맞는 것도 아니고,바다를 보고 자란 여성들의 끈질긴 생활력이 스스로 바쁜 일상을 만들고 있다.“물질 안할 때는 농사를 지어.새벽부터 바다에 나가 오전에 물질하고 와서 오후에는 밭에 나가서 일을 해.내가 물질하면서 가계를 꾸리고 자식들 지들 앞가림할 정도로 키웠으니 보람되지.한시도 놀지 않는 제주딸의 근성을 나도 갖고 있는거지.거기에 거친 동해에서 물질을 하다보니 절로 강인한 엄마가 된 것같아.그래도 이젠 나이가 들어서 쪼그리고 앉아 밭일하다보면 다리가 아파.그럴 땐 바다에 나가서 한시간 휘젓고 싶은 생각이 들지.지금은 생계를 걱정하며 물질을 한다기 보다 운동삼아서 바다에 나가는 것도 있어.물속에서 충분히 운동이 되나봐.병원 의사들도 내 관절을 보고 물질을 해서 그런지 나이에 비해서 덜 망가진 편이라고 하대.“

제주해녀가 지난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되고,올봄 우리나라 전체 해녀문화가 무형문화재로 지정됐다고 전했다.“제주해녀들은 대우가 좋더라고.제주 사는 올케의 경우 병원진료비,약값 등 혜택들이 많더라고.강원도는 해녀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아.험한 일을 한다고 생각해서인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편이지.관심이 없어.”

강원도도 2007년부터 잠수어업인에 대한 고압산소치료센터 및 시군별 지정진료기관을 통한 진료지원이 이뤄지고 있다.잠수질병 치료기회 제공으로 잠수어업인의 삶을 질 향상을 도모하기 위해 시행 중이다.그러나 잠수어업인증 발급 등 간단하지 않은 절차와 부족한 홍보로 인해 실제 많은 해녀들이 제도를 활용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

▲ 해녀들이 입는 고무옷과 장비
▲ 해녀들이 입는 고무옷과 장비
여느 시골 할머니들과는 조금 다르게 곱게 화장을 하고 계시던 이정숙 할머니는 해녀라는 직업을 가진 커리어우먼이었다.“새벽에 물질하러 가기 전에도 화장을 해.다녀와서 짠물을 다 씻고 또 화장을 하지.바다가 내 직장이나 다름없는거지 뭐.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직장에 나가면 스트레스 받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는데,나의 직장은 시원하고 속상한 일들도 잊게 만들어주는 곳이야.”

해녀는 일반 회사들처럼 정년퇴직이 없는 직업이다.그러나 신규로 시작하는 사람들은 거의 전무한 실정이다.힘들고 위험한 작업과정, 여성들의 고등교육,수산자원의 감소 등이 큰 원인이다.덧붙여 강원해녀는 70대 이상이 42%로 노령화에 접어들어 자연감소하고 있다.“내가 예전에는 물질을 80살까지만 해야지 했는데 81살이잖아.물질 안하면 몸이 찌뿌듯하고 무거워서 계속 나가게 돼.아플 때 물질하러 나오라고 하면 할 수 있을까 생각이 들다가도 막상 바다에 들어가면 아픈 걸 싹 잊게 돼.지금 입는 고무옷이 다 헤지면 안하려고 해.아직까지 자식들한테 손 안벌리고 꿋꿋하게 살고 있는게 말년의 내 자랑이야.정년이 없는 직업이라서 너무 좋지.내 건강만 허락되고,자맥질 기술만 있으면 언제나 할 수 있잖아.그런데 요즘은 바다에 채취할 물건 자체가 없어서 추천할만한 직업이 아니야.물건이 많아서 돈벌이가 된다면 여자든 남자든 하려는 사람들이 있지 않겠어?지금 물질하는 우리들이 다 죽으면 해녀는 없어질거야.그 자리는 스킨스쿠버들이 차지하겠지.수산물 크기나 금어기 등을 잘지켜야 할텐데….” 김영희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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