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겨레는 예로부터 처서가 지나면 조상의 묘소를 찾아 벌초를 하는 아름다운 전통이 있다.최근 고향이 경상도 지역이어서 당일치기로는 5기의 산소를 벌초하고 돌아오기는 무리여서 장거리 여행을 하였다.고향인근 읍내의 여관에서 하루 밤을 지낸 다음날 새벽 일찍 깊은 산속에 위치한 묘소를 찾아 벌초를 마쳤다.그런데 귀가 중 지역 주민 한분이 차를 세우며 “교인도 벌초 하니껴?”라고 물었다.그분의 반문에 어이가 없어서,“교인은 조상도 없나요.절은 하지 않지만 벌초는 자손됨의 책임이자 당연한 도리이지 않습니까?”라고 답하고 돌아섰다.

그날 그분의 물음을 고향에서 돌아오는 차안에서 곰곰이 생각해보았다.아마도 그분이 알고 있는 교인들은 벌초에 참여 할 여력이 없거나 관심이 없는 분들이었나 보다.성경은 우리의 호흡이 끊어지면 육신은 무너진 장막이라고 말씀하고 있다.(고후5:1) 우리의 장막집이 무너지는 순간 그리스도인은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에 입주(入住)한다고 알려주고 있다.그런 점에서 기독교 장례 예식의 초점은 운명한 고인을 위한다기보다 철저하게 이별의 아픔을 겪는 유가족과 친지들에게 맞추는 것이다.왜냐하면 운명하는 그 순간 영혼은 영원한 하늘의 집에 입성했기 때문이다.그러나 만일 어떤 가정에 부모나 조상의 장례를 치루면서 매장을 하여 육신을 모셨다하면 그 자손들의 당연한 의무는 힘닿는 데 까지는 산소를 돌봐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인간 세상에 살면서 타인에게 소금과 빛의 역할을 감당하기 위한 최소한의 도리이자 윤리이기 때문이다.그런데 일부분의 교인들 가운데에는 아마도 조상에 대한 기초적인 의무를 감당하지 않는 분들이 있는 모양이다.교인도 벌초를 하는가 라는 고향 주민분의 황당한 물음을 들으며,어쩌면 그분만의 생각이 아니라 비신자들의 눈에 비췬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일 수 있겠구나 싶어서 씁쓸한 귀가길이었다. 이도형 목사·국토정중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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