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민 경기 고양예고 2년

언니 어디가? 하고 물어오는 어린 목소리가 교복 넥타이를 매던 손을 멈추게 했다.학교 가야지,언니는.아무도 문 열어주면 안 돼,배고프면 여기 이거 먹고.교복만 입으면 어디 가냐 묻는 동생에게 늘 비슷한 대답을 늘어놓았다.동시에 냉장고에서 먹을 것들을 식탁에 올려두곤 했다.냉장고에 붙어있던 포스트잇이 팔락이며 떨어졌다.‘엄마 오늘 아빠한테 가야 해.’ 접착력이 다된 듯 싶었다.

집 잘 보고 있어,말하며 집을 나섰다.동생이 발령나는 게 뭔데? 하고 처음 물었던 그 때부터 지금까지,몇년동안 엄마는 항상 일주일의 반 정도는 아빠가 있는 지방으로 내려갔다.나머지 일주일의 반은 내가 엄마였다.첫째라서,언니라서 다 떠맡았다.가장 중요한 때라는 중학교의 마지막 학년 동안,나는 학생인 동시에 엄마 역할도 해야 했다.집에 있을 동생이 다치진 않았을까 걱정하며 수업을 들어야 했다.둘째 동생의 사춘기 반항을 엄마와 나,둘이 반씩 나누어 견뎌야 했다.

종례가 끝나는 동시에 집에 가도 꽤 늦었다.교복도 갈아입지 못한 채 어질러진 집을 치우기 바빴다.치우고 돌아서면 다시 어질러진 것의 반복일 뿐이었지만.소파에 앉아 숨을 돌리기도 전에,교복 넥타이를 풀기도 전에 동생들은 배고프다는 말만 연신 해댔다.내가 너희 심부름꾼이야? 나도 좀 쉬자.안 그래도 바빠 죽겠는데.화를 참지 못하고 짜증을 내 버리는 게 꼭 엄마에게 옮은 것 같았다.피아노 레슨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엄마는 늘 그 불편한 차림의 옷으로 집안을 치웠다.중간중간 한숨도 섞였고,짜증도 섞인 채였다.괜히 눈물이 날 것 같아 더 열심히 저녁 음식을 차렸다.조금 늦은 식사였다.설거지까지 끝내고 나서야 교복을 갈아입었다.온갖 냄새가 섞여 절로 표정이 일그러졌다.아빠가,엄마가 보고싶었다.

TV를 켜 놓은 채 잠든 동생들에게 이불을 덮어줬다.그러고 나서야 내 할일을 했다.문자 한 통이 와 있었다.‘우리 큰 딸,늘 고맙고 미안해.내일 아침에 만나.’ 눈물이 고인 미소가 번졌다.이불 속에 들어가자 구름을 덮은 듯,하루 동안의 피로가 사르르 녹았다.좋은 꿈을 꿀 수 있을 것 같았다.엄마 왔다,아빠도.하는 말에 가장 먼저 신발장으로 달려갔다.폭 안긴 품에서 어제 내 교복에서 나던 냄새가 났다.이번엔 표정이 일그러지지 않았다.내 교복에서 향기가 나는 거였구나,중얼거렸다.

브이를 만들어 모았다.다섯 개의 브이가 모여 별이 만들어졌다.가끔씩만 만들 수 있기에,그래서 더 소중한 우리 가족 별이,참 밝게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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