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상수 논설실장
▲ 김상수 논설실장
지난 2006년 춘천 캠프페이지가 시민의 품으로 되돌아왔다.금싸라기와 같은 땅이 어느 날 툭 던져진 것이다.활용방안을 놓고 논란이 많았으나 뾰족한 결론을 내지 못했다.저마다 이해관계에 따라 이래야한다 저래야한다 말이 많았다.그동안 도심 한 복판에 있는 시청을 옮겨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으나 제자리에 신축하는 것으로 결론이 나면서 없던 일이 됐다.캠프페이지는 지난 반세기 이상 미군부대가 주둔한 아주 특별한 곳이다.

미군의 주둔은 분단이 낳은 필연의 산물이었고 시대적 당위가 있었다.그 과정에서 춘천시민들은 안마당과 같은 땅을 주둔지로 내주면서 적지 않은 불편과 고통을 감수해야 했다.도심에 인접한 넓은 면적을 차지하게 되면서 도시발전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막는 꼴이 됐다.따라서 도시개발이 기형적으로 이뤄지는 측면이 없지 않았다.미군의 주둔에 따라 지역의 전혀 다른 문화가 형성됐고 이것이 더러는 사회문제로 비화되곤 했다.

헬기 이착륙에 따른 소음으로 주민들은 생활에 많은 불편을 겪었다.그러나 대체로 미군부대가 이곳에 주둔하는 한 어쩔 수 없는 경우가 많았던 게 사실이다.한반도의 분단과 부대주둔이 갖는 인과관계를 허물지 않는 한 숙명적 희생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는 얘기다.그러나 군사·안보적 필요가 달라지고 미군부대가 이전·철수하면서 춘천은 도심에 이 방대한 규모의 공간을 갖게 됐다.생각하면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반세기동안 족쇄처럼 느껴졌던 이 금단의 땅이 고스란히 시간이 정지된 채 춘천시에 다시 돌아온 것이다.원했던 바는 아니지만 60년 동안의 미군부대 주둔이 던져준 선물이라면 선물이다.그동안의 춘천시민들의 인내와 희생의 대가라고 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부대 주둔이라는 절대적 환경이 없었다면 어떠한 형태로든 이곳은 꽉 채워져 있을 것이다.지금쯤 재개발이 이뤄지고 고층아파트가 빽빽이 들어서 숲을 이뤘을지 모른다.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뭔가로 꽉 채워졌을 것이고 이렇게 텅 빈 공간을 바라볼 기회를 갖지 못했을 것이다.60년 동안 온갖 욕망을 누르고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을 것이고 반세기동안 채우고 또 채우는 일이 반복됐을 것이다.그랬더라면 결코 지금과 같은 빈 자리를 확보한다는 것은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꿈을 꾼다고 해도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그 원인이 어디에 있든 이 빈 땅을 갖게 됐다는 것은 기적과도 같은 일이다.

이 땅이 다시 시민의 품으로 돌아오게 되자 어떻게 채울 것인가에 다들 조바심을 낸다.시청을 옮겨야 한다는 이야기부터 공공기관 이전과 첨단산업단지를 유치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쏟아져 나왔다.이산과 분단의 역사와 시민의 숱한 애환과 인내가 빚어낸 이 무형의 공간이 한 순간에 사라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그 오랜 시간과 시민의 애증이 서려있는 터전을 그렇게 다시 사라지게 해도 되는 것인지 우려를 자아낸다.

캠프페이지는 오랜 시간과 시민의 정서가 교직돼 있는 특별한 땅이다.그 빈공간의 가치는 이곳에 무엇을 채운다고 해도 결코 상쇄될 수 없을 것이다.지난해 국립 한국문학관 유치전이 벌어지면서 이곳이 부지로 떠올랐다.그러나 문학관을 유치하면 지역의 좋은 자산이 될 것이 분명하지만 그저 유치를 위한 수단으로서 적지로 주장하는 것은 역시 생각해 볼 여지가 없지 않았다.강 건너 중도에선 6년째 레고랜드공사가 진행 중이다.

캠프페이지 건너 중도를 잇는 거대한 교각 구조물이 모습을 드러낸다.일단 공원으로 그 용도가 잡힌 것은 다행이지만 여전히 채울 논리는 산처럼 많고 그 유혹 또한 끝이 없을 것이다.그러나 고민의 방향은 어떻게 채울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비울 것인가 여야 한다.이곳은 수부 춘천의 허파에 해당한다.잘 지키고 가꾸면 춘천의 명물은 레고랜드가 아니라 캠프페이지가 될 것이다.텅 비어 있어서 오히려 꽉 찬 게 캠프페이지의 가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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