쫓겨간 황무지서 고된 노동 위로한 ‘민족의 노래’ 아리랑
1937년 연해주 거주 한인 영문 모른채 6000㎞ 이주
카자흐스탄 우슈토베 정착
겨울 나기위해 지은 토굴 현재 공동묘지로 변해
고려문화 구심점 알마티 ‘고려아리랑’ 창작 전승

1937년 소련정부는 그해 9월부터 10월까지 연해주에 거주하던 한인들의 강제이주에 들어간다.이때 남부 카자흐스탄주 아랄해 지역과 발하샤 지구,우즈베키스탄 소비에트 공화국으로 내몰린 한인이 17만여명에 이른다.이 지역은 당시만 해도 재정러시아 시대부터 유배지로 유명한 곳이었다.세찬 바람이 몰아치는 중앙아시아의 허허벌판에 떨어진 한인들은 그 이후 현재까지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4세대 후손에 이르기까지 굴절의 역사를 살아가고 있다.이들의 강제이주 역사는 수난과 고통으로 점철된 힘겨운 삶과 함께 ‘민족의 노래’ 아리랑의 분포공간을 중앙아시아와 유라시아 일대로 넓히는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했다.본지 취재진은 강제이주 80년을 맞은 중앙아시아 고려인들의 첫 정착지였던 카자흐스탄 우수토베와 알마티를 찾아 고려인의 후손들의 생활상과 아리랑 전승실태 등을 취재했다.

▲ 연해주에서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된 고려인들이 토굴 움집으로 겨울을 지낸 카자흐스탄 우슈토베 바스토베 일대가 현재는 공동묘지로 변했다.
▲ 연해주에서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된 고려인들이 토굴 움집으로 겨울을 지낸 카자흐스탄 우슈토베 바스토베 일대가 현재는 공동묘지로 변했다.
■ 중앙아시아 이주 첫 정착지 우슈토베

1937년 9월 11일 연해주 우수리스크 인근 우돌즈예역에는 인근 각지에서 몰려든 고려인들의 발길로 빼곡히 찼다.영문도 모르고 이주를 통보받은 러시아 한인들은 어디로 가는지,왜 집을 버리고 가야하는지도 모르고 비좁은 화물칸에 몸을 실었다.이동거리는 하루 평균 300여㎞ 안팎.숨도 쉬기 버거운 짐칸에서 그렇게 6000㎞를 달렸다.무려 한달간….

그리고 기차에 내려 처음 발을 내디딘 곳은 발하슈 호수로 흘러드는 까라탈강이 있는 카자흐스탄 우슈토베였다.사막과 같은 벌판에 그들을 맞이한 것은 바람과 황무지뿐이었다.그해 겨울 영하 36도를 넘나드는 추위를 이겨내기 위해 땅을 깊게 파고 나무와 갈대로 지붕을 덮은 움집형태의 ‘토굴’을 지어 힘겹게 생명을 이어갔다.아이러니하게 ‘토굴’ 현장은 현재 강제이주역사를 알리는 비석과 함께 공동묘지로 변했다.중앙아시아로 이주한 고려인들의 기구한 삶의 시작과 끝을 말 없이 보여주고 있는 듯 하다.

우리나라 면단위 규모인 우슈토베는 고려인들이 대거 정착하면서 한때 1만2000여명이 정착했다.전체 주택 10곳 중 9곳이 고려인 가정일 정도로 집단부락을 형성했다.

지난 2002년 우슈토베 고위직 공무원으로 퇴임한 고려인 2세대 인발렌진(73·여)씨는 “1990년대초 소련이 붕괴되기 이전까지 우슈토베 일대는 고려인 학교가 운영될 정도로 번성했지만 현재는 5000여명이 거주하고 있다”며 “지금도 병원,학교,협동조합 등에서 고려인 출신들의 역할이 크다”고 말했다.그는 또 “어려서부터 집에서는 고려 말을,밖에 나가서는 카자흐스탄 언어를,학교에서는 러시아어를 배웠다”며 “부친으로 부터 고려인으로서의 뿌리와 정체성을 잊지 않도록 많은 교육을 받았다”고 강조했다.남편 장미론(69)씨는 “황무지를 개간하면서 아리랑 가락이 빠지지 않았다”며 “‘아리랑고개를 넘어간다’는 가사를 부를때면 가슴이 뭉클해지는 기분은 변함이 없다”고 덧붙였다.

▲ 카자흐스탄 우슈토베역 전경
▲ 카자흐스탄 우슈토베역 전경
진용선 아리랑박물관장이 채록한 현지 주민의 아리랑 가사에서 고려인들의 애잔한 삶을 엿볼 수 있다.

자래 등에다 저 달을 싣고/그립던 내 고향을 님 찾아가네/아리 아리용 쓰리쓰리용/아라리가 났네/아리랑 고개를 나나 넘어간다//금수강송 깊고도 맑은 물에/수삼천 타고서 뱃놀이 가리/아리 아리용 쓰리쓰리용…//님 찾아가세 놀다가 가세/저 달이 지새도록 놀다나가세/아리아리용 쓰리쓰리용…//

-박 따찌아나(83·여·우슈토베 거주)

■ 아리랑로드의 거점, 알마티

카자흐스탄의 고려인들은 알마티를 중심으로 거주한다.알마티는 1997년 12월 카자흐스탄의 수도가 아스타나 이전하기 까지 수도였다.지금도 카자흐스탄의 남부 수도라고 부른다.

중앙아시아 고려인 문화의 구심점 역할을 하는 고려극장을 비롯 고려인협회와 고려인청년회,고려일보사 등이 운영되고 있는 곳이다.최근에는 한국관광공사가 알마티 지사를 개설했고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교육원이 소재하고 있다.고려인들이 강제이주된 매년 9월에는 전 카자흐스탄 고려인대회를 개최하기도 한다.

▲ 한때 고려인들이 집단 거주했던 곳을 가리키고 있는  우수토베 거주 고려인 2세대 부부 인발렌진·장미론씨.
▲ 한때 고려인들이 집단 거주했던 곳을 가리키고 있는 우수토베 거주 고려인 2세대 부부 인발렌진·장미론씨.
현재 알마티에서 전승되는 아리랑은 ‘강원도 아리랑’ ‘밀양아리랑’ ‘진도아리랑’과 같은 국내에서 전승되는 아리랑 이외에 현지에서 새롭게 창작된 ‘고려아리랑’이 눈에 띈다.고려인 아리랑은 강제이주와 함께 소비에트 재즈와 어우러졌다.독특하게 한국의 전통적인 선율을 바탕으로 재즈와 유럽풍의 음률,소비에트 곡조가 그대로 녹아들었다.이를 토대로 고려인 강제이주 역사와 개척자의 삶을 담은 노래가 ‘고려아리랑’이다.고려극장 음악감독 출신 한 야꼬브(74)는 지난 2014년 김병학 시인이 지은 가사에 곡을 붙여 ‘고려아리랑’을 작곡했다.도입부는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원동땅 불술기에 실려서/카작스탄 중아시아 러시아/뿔뿔이 흩어져 살아가도/우리는 한가족 고려사람…/(후렴)기쁘나 슬프나 괴로우나/우리를 낳아준 모국의 품/잊지 않으리 기억하리/우리는 한 뿌리 고려사람

한 야꼬브 작곡가는 “역경을 이겨낸 고려인들을 상징하는 노래가 필요하다는 얘기들이 많아 우리민족의 정서가 담긴 아리랑으로 노래를 만들었다”며 “고려인 후손들이 고려아리랑의 멜로디나 음 보다는 가사에 담긴 의미를 깊게 생각해 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카자흐스탄 알마티·우슈토베/조영길·박창현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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