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할 것같은 인형에 미세한 표정 입혀 표현 극대화
“황효창 작가, 민중 하나하나의 고독 드러내”
그를 표현하는 문인의 말은 시적이다

▲ 황효창 작 ‘나라를 지킨 사람’
▲ 황효창 작 ‘나라를 지킨 사람’
▲ 황효창 작가
▲ 황효창 작가
황효창(사진)을 표현하는 문인들의 말은 시적이다.그는 전체의 목소리가 아니라 민중 하나하나의 슬픔과 고독을 드러내려 한다고 최돈선 시인은 말한다.비틀거리고,웅얼대고,공허한 광장에서 나팔을 부는 인형은 바로 우리들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소설가 하창수가 황효창에 대해 기록한 ‘나는 인형이다’는,우리로 하여금 이 작가를 더욱 친숙하게 바라볼 수 있게 했다.

뻔할 것 같은 인형이 보여주는 미세한 표정 변화에서 읽게 되는 감정들이기에 그 효과는 훨씬 강하다.사람처럼 표정을 바꿀 수 없는 인형,사람처럼 움직일 수 없는 인형에 미세한 표정과 행동을 입혀 놓았다.그것이 직접적인 서술보다 비유를 통한 수사법으로서 효과를 크게 한다.

그래도 이런 인형들에 대해서,그의 그림 자체의 뻣뻣한 기술을 혹시 지적하고 싶을지도 모르겠다.그렇다면 오늘의 미국미술을 열었던 그랜트 우드(Grant Wood)의 인물 그림이 ‘아메리칸 고딕’으로 불렸음을 상기해보자.그것은 기법의 미숙함이 아니라 새로운 가치였다.세련된 르네상스에 앞선 시대인 중세의 고딕이 처음엔 미개함을 의미했지만,20세기에는 고유함으로 찬사를 받고 있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다.게르만 일파 고트족의 미술인 고딕은 20세기 독일표현주의에서는 가장 자랑스러운 전통이었고,히틀러의 퇴폐예술억압을 통과하며 더욱 강해졌다.

포스트모던 시대에는 거의 세계 모든 곳에서 신표현주의의 물결을 만들어내기도 했다.유연한 기교보다 훨씬 강렬한 이런 고딕적 그림의 효과가 황효창의 인형과 오늘날 그의 그림 경향으로 읽히고 있다고 한다면 어떨까.우리도 의미 있는 가치의 예 하나를 갖게 되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가 모처럼 큰 그림으로 ‘나라를 지킨 사람’을 그렸다.백두산을 배경으로 안중근 의사가 지금까지 황효창의 필법에서 나오는 그림과 다르지 않게 묘사되어 있다.형형한 눈빛과 꼿꼿한 자세는 지금까지 그의 그림이 우리에게 던졌던 강렬함의 미덕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화면의 반을 덮고 있는 태극기가 또한 이 그림에서 더욱 강력하게 자리하고 있다.한동안 애국을 오해하게 했던 안타까움을,우리의 아픈 역사와 애국의 의미 속에서 더욱 깊게 드러내고 있다.

이 그림은 춘천문화예술회관 전시장에서 열리는 ‘우리 역사’전에 출품되었다.황효창을 비롯한 미술단체 ‘산과 함께’가 열고 있는 전시다.광복 70주년을 맞아 결성된 이 단체는 그가 중심이 되었기에 이루어질 수 있었던 미술그룹이다.

백두대간의 한가운데에 위치한 산간지대의 특성 강원을 떠올리게 하는 이름이다.강원미술의 진정성을 보여줄 수 있는 살아있는 활동을 만들어보고자 결성했다.그러기 위해서는 리얼리즘의 주요작가들이 모두 참여할 토양이 필요했다.태백의 황재형,평창의 권용택,최근 상지영서대학교 총장으로 취임한 김진열을 비롯한 주요작가들이 함께 하게 된 것에는 그의 친화력이 공이었음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가정이 있는 사람은 그를 만났을 때 가급적 술을 마시지 않는 것이 좋다.그와 함께 술을 마시다보면 집에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없어져버리기 때문이라는 소설가 이외수의 말은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밤새 술을 들이키다가 새벽녘,오페라 문 앞에서 그가 곤하게 잠들어 있다.쪼그린 채 잠든 그의 겨드랑에 투명한 날개가 돋는다.’시인 윤용선은 그림을 그리듯 그를 묘사하고 있다.친구와 술은 그의 삶이 예술이게 하는 것이다.

그가 명민하게 후배와 사귈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어울리는 것도 아닐 터인데 그의 주변에는 후배들이 모여든다.다음 세대가 주변에 없는 사람이 좋은 기록으로 남을 수 없음을 그가 계산해본적도 없을 터이다.세상 모두와 친구가 될 수 있는 법,그것은 분명 그에게서 배워야 할 일임이 틀림없을 것이다.



>>> 최형순 미술평론가
정선에서 태어나 정선고·강원대를 졸업했다.서울대 미술이론 석사,홍익대 미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전북도립미술관 학예실장 등을 역임했다.1998년 구상전 공모 평론상을 수상하고 미술평론가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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