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탠퍼드대학 댄 주래프스키교수는 그의 책 ‘음식의 언어’에서 “어떤 문화도 고립된 섬이 아니며 문화와 민족과 종교 사이의 혼란스럽고 골치 아픈 경계에서 그 특성이 창조된다”고 했다.이런 말도 했다.“혁신은 언제나 작은 틈새에서 발생한다.근사한 음식도 예외가 아니어서,문화의 교차점에서 각 문화가 서로 이웃에게 빌려온 것을 수정하고,더 훌륭하게 만드는 과정에서 창조된다.음식의 언어는 이런 장소들 사이를,고대문명의 충돌과 현대의 문화충돌을 들여다보는 창문이며 인간의 인지,사회,진화를 알게 해주는 은밀한 힌트다”라고.

그의 말을 오래도록 곱씹었다.삼겹살을 먹을 때,국밥집에서 소머리고기를 씹을 때,순대를 집어들 때,오징어볶음을 바라볼 때마다.그때마다 느낀 건 그의 말이 새롭지 않다는 것이었다.각 음식의 탄생과 생명력에 대한 이야기였을 뿐.‘음식의 언어’가 뭔가?그건 나와 당신이 포함된 ‘우리’가 결혼식,송년회 등 크고 작은 모임에서 음식을 먹으면서 나누는 대화다.이를테면 “삼겹살은 노릇노릇 숯불에 구워야 제 맛이 나고,파절임은 식초가 들어가야 해” 같은.“오늘 음식은 푸짐하긴 한데 먹을게 없네”라는 말도 같은 범주로 이해된다.

몇 해 전 덴마크와 프랑스,영국을 여행할 때 나는 시쳇말로 ‘맥주’에 꽂혔다.스파케티,스테이크,피자,생선요리는 별 흥미가 없었다.그저 맥주를 맛있게 마시기 위한 보조 음식이었다.이유는 간단하다.맥주가 없으면,모든 음식이 껄끄러웠기 때문.4~5일이 지난 뒤 나는 그 나라 사람들이 왜 식사 때마다 와인과 맥주를 마시는지 비로소 이해했다.내 몸이 그걸 인지한 것이다.주래프스키 교수의 논리를 따르자면 내 몸의 세포가 ‘맥주’라는 매개체를 통해 그들의 음식과 대화를 나눴다고 할 수 있다.막걸리와 빈대떡!

평창올림픽이 다가오면서 ‘강원도 맛’ 홍보가 요란하다.올림픽 개최지인 평창,강릉,정선지역의 식재료로 만든 음식만 30여 가지.이 지역 100여개 음식점에서 맛볼 수 있다는데 이름부터 생소하다.메밀파스타,메밀 더덕 롤가스,초코감자,크림감자옹심이 등.익숙지 않으니 내 몸의 세포를 깨우지 못한다.강릉 초당두부,평창 막국수,황태해장국,오삼불고기를 떠올리면?상황은 급반전!평창을 찾는 외국 손님이 ‘메밀 파스타’에 대해 물으면 뭐라 설명할 텐가.벌써부터 말문이 막힌다.

강병로 논설위원 brkang@kado.net
저작권자 © 강원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