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꾸는 일 자체 훌륭한 인생의 목표이자 의미가 되다
꿈은 사랑에 빠진 연인들과 흡사하다
지루했던 일상 다이나믹한 활력으로
꿈이 꽃이고 꿈이 나고 꿈이 너이다
암흑같은 삶 한순간 빛나게 하는 꿈

▲ >> 최삼경   강원도청 대변인실 근무. 북한강생명포럼 이사   저서로 한국 소설 49편의 강원도 배경지를 여행하며 쓴 산문집 ‘헤이~ 강원도’가 있다.
어느 새 섣달인지 동짓달인지를 가늠해야 하는 시기가 왔다.섣달그믐이라는 말은 자연스레 외할머니를 떠오르게 하거나 어데 먼데로 가서 철철 눈이 내리는 밤에 길을 잃고 갈 곳 몰라 하는 어떤 행려가 생각난다. 그러고 보면 예전의 겨울은 스케일이 그야말로 대륙적이었다.손이 문고리에 쩍쩍 달라붙거나 부엌에서 안방까지의 짧은 레이스에도 밥상 위의 접시들이 봅스레이를 탄다.윗목에 둔 자리끼는 밤새 꽝꽝 얼어 있지만,아랫목 장판은 새카맣게 익어서 다리와 손이 그리로만 모여 들었다.

그러고 보면 요새는 눈도 예전만큼 내리지 않고,추위도 시시해져 겨울이 무섭지 않게 됐지만 마음의 온도는 훨씬 냉랭해진 것 같다.겨울의 온기래야 소여물을 끓이던 부뚜막 잔열이거나 담벼락 봉당으로 쏟아지는 햇살이 전부였어도 그곳에 줄지어 서서 해바라기를 하면 또 그런대로 한겨울이 견딜 만 했다.그런데 옛날이 정말 좋았을까?옛날은 우리의 기억처럼 그렇게 좔좔 정이 흐르고 서로 믿거라~ 살았을까?왜 유년기 기억들은 춥고 배가 고팠어도 아름다운 곡절을 갖고 있을까.그것처럼 세시 풍속은 꼭 겨울이 되어야 천천히 음미하게 되는 걸까.차가운 바람을 속인 채 문풍지가 나부끼는 단골 주막에 앉아야 생각나는 18번 노래처럼.

달리는 말은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라는 얘기처럼 우리가 예전을 자꾸 돌아보는 이유는 대부분 현재가 마뜩찮기 때문일 것이다.마치 길은 멀고 날은 저무는 형국이다.관련하여 ‘지금 여기’와 ‘욜로(YOLO)’라는 말이 금과옥조가 된다.‘지금을 즐기라’거나 ‘한번 뿐인 인생’후회하지 말고 잘 살자는 의미인데 자칫 행복하기 위해서 더 크고 화려할 수도 있는 행복을 포기하자는,더 이상 현실 때문에 상처 받지 말자는 이상한 방어기제가 될 수 있다.이른바 작은 만족의 돌려막기인데,그만큼 현실이 팍팍해졌다는 얘기이겠다.

아라비아 사막의 행상들이 밤에도 길을 찾는 것은 멀리 북극성이 있기 때문이다.북극성의 위치를 보고 자신의 행보를 가늠하며 목적지를 찾기 때문이다.꿈도 이와 같아서 당장은 어둡고 외로워 갈수 없을 것 같은 길을 찾게 하고 힘을 내서 걷게 하는 것이다.꿈은 이처럼 특별하여서 그것을 꿈꾸는 일 자체가 훌륭한 생의 목표이자 의미가 된다.어쩌면 그것의 달성 여부는 이미 중요하지 않을지 모른다.꿈은 그것을 갖게 되는 순간부터 이전의 자신과 다른 사람이 되기 때문이다.이런 면에서 꿈은 어쩌면 사랑에 빠진 연인들과 흡사하다.사랑에 빠진 연인들이 그렇듯 꿈을 갖게 되는 순간,지루했던 일상이 긴박하고 다이나믹한 활력으로 가득 찬다.매일 의욕이 치솟고 신기하고 즐겁고 새로워진다.

게다가 꿈을 갖게 되면 더 이상 누구에게도 부림을 받지 않는 지위에 서게 된다.군자불기(君子不器)라는 말은 공자가 해서 유명해진 말이지만,우리 존재는 누구도 어떤 활용의 수단이 되지 않아야 한다는 점에서 단언적이다.모두들 효율과 쓰임새를 따지는 가성비의 시대에 그 경계는 꿈을 꾸고 있는가와 꿈이 없는 가로 갈려지기 때문에 곰곰 되새길만한 것이다.이미 경제활동 자체가 누군가 혹은 무엇의 지시와 강제에 순응해야 한다는 것과 동의어가 됐다.이런 익명의 조직과 시스템의 시대에 자신의 결을 그리며 자신의 삶을 살아내기 위해서는 오직 꿈꾸는 일밖에 없다.소행성 B612에 남겨 진 어린왕자도 꿈이 있었기에 막막한 고립을 견딜 수 있었다.

현대인들은 이 고립감에 더해 잉여라는 이중고에 봉착해 있다.나와 나의 가치는 늘 엇갈리고 일치하지 않는다.자연인 나와 상품인 나는 동전의 양면이지만 그때그때 잣대가 달라 늘 혼란에 있다.게다가 나를 닮은 타인들이 파도처럼 도시 곳곳에서 무표정하고,무감동하게 끝없이 밀려온다.심지어 내가 없어도 나는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처럼 독자성은 개뿔이거나 개똥이 되고야 만다.이런 쓸쓸함을 지우자고 상품은 끊임없이 욕망을 키우고 간질이고 할퀸다.섬모를 밀어내고 왁스 처리된 도시들,완전을 몰라서 구멍이 난 항아리처럼 갈급증에 시달리는 욕망들,시지프스의 돌처럼 영원히 채워지지 않는 결핍이 유령이 되어 떠돈다.때가 쌓여도 근육이 되지 않는 이치처럼 결핍은 또 다시 욕망을 낳는다.급기야 이 욕망은 물리의 세상을 못 견디고 사이버 세상으로 번져 나간다.

세상의 어둠이자 갈애의 자식들은 이제 욕망실현의 영토로 기꺼이 스마트 폰의 신도로 투신한다.스마트 폰이 세상의 구원이자,목자가 된 시대라 아무도 저항하지 못한 채 그야말로 로그인천국,방전지옥이 돼 가고 있다.이젠 네비가 없으면 자기 집도 찾아가지 못할 지경에 이른다.스마트 폰이 없으면 전화는 둘째 치고 뉴스,정보,금융,사교 등 생활 자체가 불가능해진다.이것은 단지 정서상의 문제가 아니라 실질적인 현실이 된다.자기 주도적 삶이라는 말은 점점 사전 속으로 몸을 숨긴다.이 확장되는 사이버 세상이 앞으로 어떤 미래를 열어갈지 예측은 어렵다.다만,그 시대에도 꿈은 더 빛나고 더 소중해질 것이다.꿈은 어쩌면 햇빛이나 공기처럼 무한 공공재로 널려 있지만 그것을 취해 자신의 삶을 의미롭게 하는가 여부는 전적으로 본인에게 달려 있다.이렇게 꿈은 생의 목표이자 의미여서 꿈이 밥이고,꿈이 잠이고,꿈이 꽃이고,꿈이 나고 꿈이 너이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이것이 오직 변하지 않는 원칙이다.하나의 도시 아래에는 또 하나 도시의 유적이 파묻혀 있다.오래된 마을은 지붕이 무너지고 벽이 쓰러지고 길이 허물어진다.그 위로 무심히 바람이 지나고 먼지가 쌓이고 흙이 두터워진다.나무가 쓰러지고 진토가 되고 문명이 그 위로 우악스레 자리를 잡는다.어디 도시뿐이랴 바람도 한자리에 머물지 못한다.햇살도 같은 곳을 오래도록 비추지 못하고,강도 같은 물을 보내지 못한다.모든 것은 변한다.그렇지만,사라지지는 않는다.보이지 않으면 사라진 것일까.모든 것이 사라져도 이 무위를 빛나게 하는 것이 있다.이 암흑 같고 지옥 같은 일상을 한순간에 빛나게 하는 것이 있다.꿈! 이것은 어쩌면 이 작고 힘없는 것이 우리에게는 가장 크고 위대하고 유일한 것일지 모른다. 확실한 것은 꿈이 없다면 더이상 꽃길은 없다는 것이다.꿈이 꽃이다. 

>> 최삼경
강원도청 대변인실 근무. 북한강생명포럼 이사
저서로 한국 소설 49편의 강원도 배경지를 여행하며 쓴 산문집 ‘헤이~ 강원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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