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창수 소설가
▲ 하창수 소설가
부상으로 결승진출이 좌절되긴 했지만 한국 테니스 역사에 새로운 장을 연 스물두 살 청년은 16강전에서 왕년의 세계1위 선수를 물리치고 가진 기자회견에서 한 외신기자로부터 평창올림픽 남북단일팀 구성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았다.청년은 이 질문에 답을 하지 않았다.자신은 테니스 선수일 뿐이며 남북단일팀 구성은 정치적 사안이므로 자신이 대답할 성질이 아니라는 것이 대답을 피한 이유였다.

수년 전 ‘강남스타일’이란 노래가 세계적인 선풍을 일으켰을 때,뮤직비디오에 나온 기발한 춤도 굉장한 인기를 끌었다.너도나도 춤을 따라했고,자신들의 춤을 동영상으로 찍어 SNS에 올리는 게 대유행이었다.열기는 외국으로까지 번져나갔고,해당 가수는 미국의 유명 아침방송에 출연해 그 기발한 춤사위를 직접 보여주기도 했다.당시 수많은 프로그램에 게스트로 초청되었던 그는 샌프란시스코의 한 라디오방송에 출연해 진행자로부터 질문 하나를 받는다.‘강남스타일’에 빠진 지역 소방대원 몇 명이 점심시간을 이용해 노래를 틀어놓고 군무를 춘 동영상을 SNS에 올렸다가 근무태만으로 모두 잘렸는데 거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거였다.그때 가수가 한 대답은 “유감이네요”가 전부였다.그 짤막한 답변이 그 사안에 대해 그가 가진 견해의 전부였는지,더 있었지만 하지 못한 것인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퇴고라는 과정을 통해 고칠 수 있는 기회가 허용되는 글과는 달리 말은 고치거나 바꾸는 데 큰 진통이 따른다.그래서 하기 전에 신중하게 골라야 하는 게 말이고,가능하면 많이 하지 않는 게 미덕으로 여겨진다.말에 대한 수많은 금언은 대부분 이 절제의 미덕과 동행한다.“말이 많으면 쓸 말이 부족하다”(노자)거나 “리더십은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드러난다”(해럴드 제닌)거나 “인생에서 배운 모든 것은 세 마디면 충분히 설명할 수 있다”(로버트 프로스트)는 어록 또한 같은 맥락이다.“말이 침묵할 때,음악이 말한다”던 안데르센의 ‘말’은 아름답기까지 하다.

이런 점에서 말로 먹고살(!) 수밖에 없는 방송인이나 정치인이 사람들의 입길에 자주 오르내리는 건 가히 운명적이다.그러나 인간의 세 치 혀에서 나온 언설이 세계의 역사를 바꾼 일은 생각보다 적지 않다.인류사에 위대한 업적을 남긴 존재들은 하나같이 자신의 생각을 숨기지 않고 드러낸 사람들이었다.잘못을 변명하고,죄를 호도하고,없는 말을 지어내고,거짓말을 늘어놓고,별 것 없는 공을 자랑하며 떠들 때 쓰이는 것도 말이지만,과오를 저지른 자를 징치하고,그의 죄를 밝히고,절체절명의 위기를 타개하고,진리를 설파하고,숨은 진실을 드러낼 때 쓰는 것 또한 말이다.말의 절제를 경고하고 충고하는 것은 중요하지만,말의 모든 절제가 미덕이 아니란 것도 중요한 사실이다.해야 할 말을 하지 않는 것은 미덕이 아니라 오히려 악덕이며 기회가 왔을 때 분명하게 ‘말’하는 것은 반드시,그리고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남북한의 선수들이 하나의 팀을 이루는 일이 상당부분 ‘정치적’일 수는 있지만,그것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것이 곧 ‘정치적’이 되는 건 아니다.자신의 노래에 맞춰 점심시간에 춤을 추었다는 이유로 직장에서 쫓겨난 사람들에게 “유감” 이상의 말을 하는 것은 어쩌면 자신의 팬을 위한 도리일 수 있다.1960년대 살해위협이 상존하던 흑인인권운동가의 집회에 함께 하며 자신의 목소리를 들려주던 젊은 백인은 당대의 유명가수(존 바에즈)였고,세월호 합동분양소를 찾아가 눈물 그렁한 목소리로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노력하겠습니다”는 말을 한 사람은 현역 배구선수(김연경)였다.



■약력 △소설가·번역가 △1987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 등단 △2017현진건문학상·강원문화예술상 수상
저작권자 © 강원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