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개항한 양양공항은 동해안 최북단 국제공항이다.강릉비행장의 민항기능과 소규모 속초공항을 통합해 출범한 민간공항이다.냉전시대 변방이던 이곳에 국제공항이 들어선 데는 보이지 않는 전략적 의미가 있었다.지정학적으로 동해의 출구를 찾으려는 중국,극동개발로 동진 전략을 펴는 러시아,일본의 서해안 전략의 이해가 언제 격랑으로 변할지 모르는 곳이다.그 삼각파도의 맞은편에 양양이 있다.

그러나 이런 배경이 무색하게도 지난 17년은 존폐를 걱정하는 나날이었다.이 공항이 지닌 전략적 가치나 지역의 기대는 수익을 내야 하는 민간공항의 현실 사이에 적지 않는 간극이 있었다.개항 10년도 안 돼 누적 적자가 100억 원을 넘어서면서 공항의 생명줄이나 다름없는 나라안팎의 노선이 툭하면 끊어졌다.그러나 양양공항은 2002년 4월 개항 첫해 북한의 민항기가 잇따라 다녀가며 그 진가를 드러낸다.

당시 북한의 함경남도 금호 지구에 경수로사업이 진행 중이었다.인력과 물자수송을 위한 항공수송로가 필요했고 이 때 양양과 북한 선덕을 잇는 항공노선이 뚫렸다.개항과 동시에 그 역할을 톡톡히 한 것이다.그해 7월 고려민항 TU-134(러시아제 수송기) 70명의 관계자를 태우고 양양공항을 다녀가는 시험비행을 했고,10월에는 양양에서 경수로사업 관계자와 노무자를 수송하는 두 번째 비행이 이뤄졌다.

비록 군사적인 문제 때문에 동해상으로 빠져나갔다가 북상한 뒤 내륙으로 다시 진입하는 우회로를 택해야 했지만 오랜 분단의 체증을 내려준 사건이었다.천덕꾸러기 대접을 받아온 양양공항이 지닌 보이지 않는 잠재력이다.그 때 KEDO(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를 통한 경수로 솔루션이 정상적으로 진행됐더라면 현재의 북핵 문제도 달라졌을 것이다.양양공항도 그 과정에서 더 큰 평화의 거점이 됐을 것 같다.

2009년 현대그룹과 북한이 백두산관광을 비롯한 5개 항에 합의하면서 양양~삼지연 항로가 검토됐었다.이제 올림픽을 앞두고 양양공항이 또 한 번 그 존재감을 보여준다.엊그제 양양공항을 출발한 아시아나항공이 북한의 원산 갈마비행장을 왕복했다.마식령스키장에서 진행되는 남북 공동 훈련단을 태우고 갔다가 어제 평창올림픽 북한 선수단을 싣고 왔다.낯선 초행길이지만 다니다보면 큰 길이 될 것이다.

김상수 논설실장 ssookim@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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