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창성 경제부장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앨런 그린스펀(Alan Greenspan) 의장은 지난 30일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세금감면정책에 반대하는 입장을 피력했다. 그는 이날 하원 재무위원회에서 "부시 대통령의 감세정책으로 연방정부의 거대한 재정적자가 우려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 2월에도 상원 금융위원회에 출석, "현시점에서 경기 부양책은 시기상조"라고 단언했다. 그린스펀 의장은 "미-이라크전쟁 위협으로 경제에 대한 불확실성이 크다"며 "현재로선 부양책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당시 경제전문가들은 이 발언이 6천740억 달러 규모의 경기부양 예산안을 의회에 제출한 부시 대통령의 경제정책에 커다란 타격을 주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앨런 그린스펀(77)은 87년 레이건 대통령에 의해 FRB 의장에 임명된후 15년 넘게 의장직을 맡고 있다. 2005년 6월까지 임기가 보장된 그는 공화당과 민주당에 이어, 다시 공화당 정권인 현재에 이르기까지 무려 4번에 걸쳐 의장직을 수행하고 있다.
 미국의 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우리의 한국은행과 비교되곤 한다. 권위주의 정권시대 정치권의 입김에 휘둘리던 한국은행을 지켜보며 우리들은 독립성을 자랑하는 FRB를 부러워했다. 우리 한국은행은 한때 재무부의 '남대문 출장소'로 불렸다. 개발독재 시절 중앙은행은 독자적인 통화정책은 커녕, 정부의 금고역할에 불과했다. 그러나 한국은행도 중앙은행으로서 독립적인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지난 2000년 한은은 금융통화위원회를 열고 콜금리를 0.25% 포인트 올렸다. 당시 이 결정이 관심을 끈 것은 한국은행이 정부의 뜻을 거스르면서까지 금리를 올릴 수 있겠냐는 불신 때문이었다. 당시 정부는 4월 총선을 앞두고 선거에 부담이 되는 금리인상을 반대했었다. 그러나 한은은 금리인상이 장기적으로 금리안정에 도움이 된다며 콜금리 인상을 강행했다.
 중앙은행의 독립은 선진적인 경제구조 구축의 선결과제다. 클린턴 시절 전후 최장의 호황을 거듭하는 미국경제의 성공요인으로 미국금융의 경쟁력을 꼽는 사람이 많았다. 전문가들은 막강한 미국 금융산업의 경쟁력을 FRB의 독립성에서 찾는다. 성추문 파문에 휩싸여 국정이 마비됐을 때도 미국경제가 순항을 거듭했던 것도 중앙은행의 독립 때문에 가능했다는 평가다. 미국은 통화정책에 관한 한 또 하나의 정부를 갖고 있다. FRB 의장인 앨런 그린스펀은 또 한명의 대통령이다. 그린스펀의 말 한마디는 천금(千金)과 같다. 금리인상을 시사하는 그의 발언 한마디 한마디에 우리의 주식시장은 물론 전세계의 주식시장이 요동친다. '그린스펀 효과'(Greenspan Effect)다.
 한국은행 강원본부가 전국 관광학과 교수와 국내 50대 여행사를 대상으로 강원관광의 경쟁력을 묻는 조사를 2차례에 걸쳐 실시했다. 조사결과, 강원관광의 경쟁력은 서울, 제주에 이어 3위로 나타났다. 현장에서 뛰며 관광객들의 반응과 여론을 읽어내는 여행사 관계자들은 서울과 제주관광의 경쟁력을 각각 41.9%로 고평가한 반면 강원관광은 9.7%로 저평가했다. 이 자료 발표를 계기로 한국관광 1번지를 자처해온 강원도가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도지사까지 나서 한은의 조사 방법을 거론하며 그 의미와 가치를 폄(貶)하고 있다. 이번 조사는 한국관광 1번지를 지향하는 강원도에게는 뼈아픈 지적이다. 그러나 자성과 분발의 계기가 될 지언정 폄하거나 그 의미가 훼손돼서는 안된다. 강원도의 경제정책 수립과 진단에 고언(苦言)을 해온 한국은행의 독립성과 그 의욕을 해칠까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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