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덕림 전 매일경제 편집부장
▲ 이덕림 전 매일경제 편집부장
종다리 노래 끊긴 고향 들판엔 ‘침묵의 봄‘만 머물고 있었다.

‘푸른 하늘로 푸른 하늘로/항시 날아오르는 노고지리 같이/ 맑고 아름다운 하늘을 받들어/그 속에 높은 넋을 살게 하자’-조지훈(趙芝薰)) ‘마음의 태양’에서.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남구만(南九萬).

‘샛별지자 종다리 떴다 호미 메고 사립 나니…’-이재(李縡).

예로부터 시가(詩歌)의 소재로 사랑받은 종달새.국어사전에 올라있는 표제어는 ‘종다리’이지만 ‘노고지리’란 예스러운 이름이 한층 정답다.그밖에도 ‘고천자(告天子)’ ‘운작(雲雀)’ 같은 운치 있는 이름이 따르는 것으로 미루어 노고지리는 선인(先人)들로부터 남달리 각별한 예우를 받은 애조(愛鳥)로 보인다.그런가하면 하이든의 현악4중주 ‘종달새’가 말해주듯 유럽에서도 사랑받는 새임을 알 수 있다.

노고지리는 전원생활의 평화스러움을 떠올리게 한다.부지런함의 상징이기도 하다.농경사회의 첫째 덕목이 근면인 만큼 이 땅에서 삶을 누리던 우리네 선조들은 모두 ‘종달새족(族)’이었을 것임에 틀림없다.

곡우(穀雨) 아랫녘, 노고지리를 찾아 고향마을에 들렀다. 옛 어른들 얘기로는 청명절(淸明節) 즈음에 노고지리가 나타난다고 했으니 지금쯤 그 날렵한 맵시의 명조(鳴鳥)가 불러주는 봄노래를 들을 수 있겠구나 싶어서였다.

봄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들판,하늘 높이 떠올라 가물가물 한 점처럼 보이는 모습으로 맑고 고운 노래를 들려주던 노고지리.아스라한 추억을 떠올리며 찾아간 발길은 아쉬움과 안쓰러움만 안고 온 부질없는 도로(徒勞)였다.

‘삼동내-얼었다 나온 나를/종달새 지리 지리 지리리…/왜 저리 놀려대누/어머니 없이 자란 나를/종달새 지리 지리 지리리…/왜 저리 놀려대누’-정지용(鄭芝溶) ‘종달새‘에서

‘종달새,종달새/너 어디서 우느냐/보오얀 봄 하늘에/봐도 봐도 없건만/비일 비일 종종종 비일 비일 종종종’-이원수(李元壽) ‘종달새‘에서

‘지리 지리 지리리’…? ‘비일 비일 종종종’…?

노고지리의 지저귐은 듣는 이마다 다르게 받아들일 정도여서 표현하기가 쉽지 않다.벌판에 서서 조용히 눈을 감고 있으면 하늘 저 멀리서 봄바람에 실려 오는 가녀린 가락이 귓전을 간지럽히던 기억이 어렴풋하다.짐짓 연가(戀歌)로 오해하기 쉽지만 텃세권을 지키기 위한 수컷의 으름장(?)이라는 사실이 생뚱맞기는 하지만 말이다. 많던 노고지리는 다 어디로 갔을까? 봄비에 씻긴 맑은 하늘에 퍼지던 그 청아한 노래를 이젠 다시 들을 수 없게 된 것인가?고향을 지키고 있는 친구의 말은 언제부터인지 모를 만큼 노고지리가 안 보인지가 오래 되었다고 한다.씁쓸한 마음을 다독이며 노고지리의 노래를 들으며 뛰놀던 들판으로 나갔다.그제야 왜 노고지리들이 사라졌는지 알만 했다.물장구치던 개울도,풋풋하던 들판도 옛 모습이 아니었다.추억 속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낯선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벌판을 휘돌아 북한강 상류로 흘러들던 앞개울은 은근했던 물길이 불도저에 의해 왜곡돼 있었고,뼝대와 다북쑥,갈다리 등이 어울려 노고지리들이 즐겨 깃들이던 들판은 북한에서는 ‘누더기풀’이라고 끔찍하게 여기는 귀화식물 ‘돼지풀’이 잠식하고 있었다.산천이 의구(依舊)하지 않거늘 노고지리만이 어릴 적 그대로 기다리고 있어 주기를 어찌 기대할 것인가? 종다리 노랫소리 끊긴 들판엔 ‘침묵의 봄’만 머물다 갈 뿐이었다.



필자는 압록강변 중국 단둥(丹東) 소재 재무중전(財貿中專)에서 여러 해 동안 한국어 교사로 봉직했다.춘천시 남산면 출신으로 오랜만에 고향에 들려 어릴 적 추억을 떠올리며 세월의 흐름에서 느낀 감상을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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