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한 중국인 학자와 이야기 나눌 기회가 있었다.그는 한반도 정세에 관해 비교적 객관적 입장에서 바라봤다.북한의 핵 개발과 도발로 한반도의 정세가 좋지 않았고 한중 관계 또한 매끄럽지 못한 때였다.이야기는 한반도의 긴장 국면이 어떻게 전개될 것이며 남북한의 통일은 가능할 것인가 라는 데로 모아졌다.40대의 젊은 교수는 어디부터 손을 대면 좋을 지 난감한 문제를 명쾌하게 정리하고 있었다.

그의 결론은 두 가지였다.그 첫째는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의 어느 나라도 한국의 통일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고,두 번째는 그러나 반드시 통일은 된다는 것이다.그는 이 충돌하는 논리를 거침없이 말했다.한 치의 주저함도 없이 오래 전 검토를 마치고 준비해 놓은 답변을 쏟아내듯 하는 것이었다.그가 무슨 배짱으로 복잡하고 민감하기 짝이 없는 한반도의 앞날에 대해서 이처럼 겁 없이 얘기하나 싶었다.

물론 한반도 주변국이 통일을 원하지 않는다는 가설은 수 없이 들어온 얘기다.그 얘기를 먼저 했다.우선 중국은 친미 성향의 통일한국과 국경을 맞대고 싶어 하지 않는다.중국인에게는 본능적으로 이런 심리적 방어기제가 있다는 일반론을 그가 다시 얘기했다.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다시피하는 동북 3성이 통일한반도라는 달라진 환경에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 염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는 점도 들었다.

미국은 미국대로 미군의 주둔 문제가 다른 각도에서 논의될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그 역할론을 계산할 것이고,일본 또한 ‘안정된 분단국가’ 그들의 국익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그러면 제일 중요한 남북한 당사자의 입장은 어떤가도 얘기했다.북한은 선군 정치를 통해 현 체제를 고수하려는 관성이 있고,남한은 급격한 통일에 대한 위험 부담 때문에 주저하는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남북한 당사자의 의지도 약하고 주변 열강도 말리는 입장이라면 통일은 물 건너간 것 아닌가.그런데 통일은 반드시 된다고 단언했다.긴 호흡으로 보면 통일은 언젠가 오는 것일지 모른다.‘합친 지 오래면 나뉘고,나뉜 지 오래며 합치기를(合久必分 分久必合)’ 반복하는 게 천하던가.그러나 그가 이 말을 한 때는 한반도에 먹구름이 몰려들던 때다.그는 짙은 어둠속에서 사람이 막을 수 없는 봄을 봤던 것 같다.

김상수 논설실장 ssookim@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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