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수는 물에 새기고,은혜는 돌에 새겨라’는 옛말이 있습니다.옛 선조들은 지방관이나 지역을 위하여 헌신한 이들을 기리기 위하여 불망비나 선정비를 세워서 후손들에게 기억하도록 하였다.누군가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친 사람으로 기억되어진다는 것은 그만큼 값진 인생을 살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용무가 있어서 근처의 교우 댁을 걸어서 가던 중 생경한 비석이 눈에 띄었다.양구 도촌리에 적을 둔지 만4년이 되었지만 처음 보는 비석이어서 자세히 살폈더니 남면장 최양환 선덕비(南面長 崔良煥 善德碑)였다.‘최양환 면장 선덕비는 1941년 6월 1일 면민의 이름으로 당시 면 소재지인 도촌리에 세웠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며,한국전쟁 중 훼손되어 방치된 것을 1960년대 도촌리 청년회원들이 도촌 삼거리 공원에 세우고 정비하였으나 훼손된 부분이 많아 2007년 후손인 최규화씨가 비석을 새로이 세웠다.’는 기록이 선덕비에 쓰여 있었다.

이웃마을인 구암리 초입에서 의생 김익하 선덕비를 본 적이 있지만 내가 사는 마을에서 선덕비를 발견하면서 자연스럽게 주인공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3년 전 군청에서 보내 준 양구군지를 아무리 살펴보아도 이분에 대한 기록을 찾을 수 없기에 양구문화원으로 연락해 자료를 찾을 수 있었다.자료에 의하면 최 면장은 일제 치하에 억압과 가난에 시달리던 면민들에게 올곧은 목민관으로서의 덕을 펼쳤기에 면민들이 그 뜻을 기려 선덕비를 세운 것으로 짐작할 수 있었다.예컨대 충북 보은군 수한면 동정리에 세워진 ‘보광경주김공동구선덕비’를 보면 ‘경주인 김동구는 자신도 어려운 상황에서 푼푼이 모아 놓은 돈으로 동정리 및 인근 마을 노인들을 수 차례에 걸쳐 효도관광을 시켜줌으로서 마을 어른들에게 칭송이 자자하여 마을주민들이 작은 마음을 담아 이곳에 1995년 9월 18일 선덕비를 세웠다’고 한다.(시골 기차 카페에서 인용)

이러한 예를 살피건대 도촌 삼거리에 세워진‘남면장 선덕비’의 주인공 역시 일제 치하에서 지난한 삶을 이어가던 면민들에게 어버이같이 선정을 베풀었기에 그 덕을 면민들이 돌에 새기었으리라 짐작한다.

이도형·국토정중앙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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