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사-이홍섭 시인

조계종단의 어른이자,한국문단의 큰 별이셨던 설악 무산 대종사께서 홀연히 열반에 드시니,설악산은 말을 잃고 동해 바다는 적요할 뿐입니다.스님께서 살아생전 보여주신 생각과 행동은 일체의 걸림이 없어 실로 ‘무애도인’의 행각 그 자체였으며,승속을 불문하고 모든 이들을 품었던 따뜻한 화안애어는 지혜와 자비의 표상이었습니다.

신흥사 조실과 조계종 원로의원을 역임하시면서 보여주신 사사봉공의 승가정신과 문인으로 보여주신 자유자재한 필력은 너무 크고 빛나서 감히 필설로 다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특히,백담사와 낙산사의 백년 중창을 일거에 성취하시고 선원들을 잇달아 개원하여 설악산 도량을 ‘조계선풍시원도량설악산문’으로 우뚝 설 수 있게 한 공덕은 우리 불교사에 길이 남을 것입니다.또한,만해사상실천선양회를 발족하여 매년 만해축전을 봉행하면서 자유,평등,평화의 만해사상을 오늘날에 되살린 공적 또한 대중들의 마음에 오롯하게 자리 잡을 것입니다.

스님께서 대중들에게 펼쳐 보이신 행적과 감로법문은,배우는 자들은 무릇 살아있는 말을 참구해야 한다는 수참활구의 진경이었습니다.이 진경을 다시 만날 수 없다고 생각하니,애통함으로 다시금 가슴이 미어집니다.스님께서는 일찍이 적멸을 참구하시면서 “삶의 즐거움을 모르는 놈이/ 죽음의 즐거움을 알겠느냐// 어차피 한 마리/ 기는 벌레가 아니더냐// 이 다음 숲에서 사는/ 새의 먹이로 가야겠다”(‘적멸을 위하여’)라고 노래하신 바 있습니다.

비록 오고 감이 바람 같고,구름 같고,꿈같은 것이라 할지라도 이처럼 환귀본처하여 말없는 실상만 보이시니 눈물이 앞을 가릴 뿐입니다.설악은 고요적적하고,천불은 입을 다무니 산하대지에 적멸만이 가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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