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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어보는 양승태 대법원장의 퇴임사

국민이 법관에게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말뿐인 섬김이 아니라 공정한 판결일 것이다.

송현주 2018년 05월 29일 화요일
▲ 송현주 한림대 교수
▲ 송현주 한림대 교수
지난 25일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특별조사단’의 조사결과가 발표됐다.대법원의 자체 조사를 통해 드러난 정황,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는 내용임에도 대단히 충격적이다.법원행정처가 판사들을 조사하고 관리한 정황,판결에 대한 예측과 분석을 청와대와 긴밀히 공유한 정황,상고법원 설치를 위해 판결을 협상 수단으로 활용한 정황 등은 양승태씨가 대법원장 시절 개별 법관의 독립성은 물론 사법부 전체의 독립성을 훼손했다는 점을 명백하게 보여준다.현재까지 드러난 사실만으로도 그는 사법행정권 남용 정도가 아니라 헌정질서 유린 행위로 사법적 단죄는 물론 더 엄중한 도덕적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그런데 지난 해 9월 당시 언론의 주목을 받았던 양승태씨의 대법원장 퇴임사는 지금 보니 위선으로 점철된 반어적 자기 고백에 다름 아니었다.

그는 국민의 신뢰가 사법부의 유일한 존립 기반임을 강조하고 그 신뢰를 얻기 위해 국민을 섬기려는 마음이 중요하다고 역설했다.다 맞는 말이지만,국민이 법관에게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말뿐인 섬김이 아니라 공정한 판결일 것이다.뒤로는 청와대의 비위를 맞추고 거슬리는 법관들을 블랙리스트로 관리하는 사법부가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는 없다.이어서 그는 사법체계의 근간이 흔들리거나 정치적인 세력 등의 부당한 영향력이 침투할 틈이 조금이라도 허용될 경우 사법부 독립은 무너지고 민주주의는 후퇴할 것이라고 말했다.이 또한 흠잡을 곳 하나 없이 옳은 말이다.하지만 그가 말하는 부당한 영향력은 청와대나 국회,재벌과 같은 정치권력,경제권력의 압력이 아니라 판결을 비판하고 억울함을 호소하는 시민들의 목소리였던 것으로 보인다.정작 자신은 부당한 압력이 흘러들어올 물꼬를 트고 법원의 관료화를 통해 법관의 독립성을 침해함으로써 사법체계의 근간을 무너뜨렸다.법관에게조차 가혹했던 군사정권 시절에 외압에 굴복한 것이라면 참담함과 분노가 차라리 덜할 수도 있겠다.번듯한 민주공화국에서 정권의 전횡을 견제해야 할 사법부가 정권의 동반자,수호자임을 자임했다.그 명분이 무슨 대단한 신념이나 이데올로기도 아니고 상고법원 설치라는 민원을 관철시키기 위해서였다.헌법기관이 이익집단이나 할 일을 했던 것이다.

“한 그루 늙은 나무도/고목 소리 들으려면/속은 으레껏 썩고/곧은 가지들은 다 부러져야/그 물론 굽은 등걸에/매 맞은 자국들도 남아 있어야” 어느 늙은 정치인의 고별사가 아니다.양승태씨가 퇴임사 말미에 인용한 ‘고목 소리 들으려면’이라는 시다.유신시절에 임용돼 40년 넘는 세월을 법관으로 살아 온 그가 견뎌야 했던 풍상을 지금의 세대들은 가늠하기조차 어렵다.하지만 최소한 마지막 6년,대법원장으로서 양승태씨는 고목 위에 청죽을 싹틔웠어야 했다.대신 그는 지난 수십 년간 걸어왔던 썩어가고 부러지고 굽어가는 고목의 길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대법원장으로서 그가 누려왔던 명예와 영광은 대한민국과 사법부를 위해서 뒤늦게라도 회수되는 것이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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