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학은 미의 학문일까
미술·미학 의미 제한된 번역
미술활동 열린개념 이해돼야
미학, 아름다움 의미로 남용
'감성적 인식의 학문' 진짜 뜻

▲ 역동적으로 튕겨나갈듯 웅크린 소가 있는 그림이 그려진 구석기시대 동굴벽화
▲ 역동적으로 튕겨나갈듯 웅크린 소가 있는 그림이 그려진 구석기시대 동굴벽화
미학은 각종 홍보에 참 자주 쓰이는 말이다.느림의 미학,기다림의 미학,색채와 맛의 미학,순간의 미학 등.여유나 기다림,소소한 일상이나 사진과 같은 분야,특히 광고에서 자주 보게 된다.우리의 일상에 쓰는 말의 표현을 장식해 주고 있는 것이다.감수성이 예민한 분야나 디자인,패션에서 이렇게 좋은 말이 있나 치켜세우는 사람들도 자주 보게 된다.

미술(美術)처럼 미학(美學)도 번역된 말이다.다시 한 번 미술이라는 말이 우리에게 일상화된 것이 백여 년 남짓에 불과하다는 걸 생각할 필요가 있다.원래부터 있던 것처럼 익숙한 미술이라는 말보다 훨씬 사용빈도가 적었기에 미학이라는 말은 그나마 신비감이 있는 모양이다.미학이라는 말에서 시적 향취를 느끼는 것은 그런 이유도 있을 것이다.

전에 말했듯 ‘미술’은 프랑스 말 보자르(beaux-arts)를 번역한 것이다.말 그대로 우리가 다 아는 영어로 옮기면 뷰티풀 아트(beautiful art) 정도가 된다.그런데 영어에서는 미술을 다른 말로 쓴다.파인 아트(fine art)다.그걸 말 그대로 옮기면 ‘순수예술’이다.뉘앙스가 다르지 않은가.우리가 쉽게 생각하는 대로 ‘아름다움을 그리는 기술’이라는 것은 말을 따라간 해석이다.말 때문에 왜 미술이 아름답지 못한 것을 다루고 있냐는 핀잔도 여전히 나오고 있다.번역어 미술은 때로 그런 오해로 미술 활동을 가두고 제한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아주 옛날 인류가 문자를 쓰기도 전,그러니까 선사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그 때는 금속이 아닌 돌로 만든 도구를 쓰는 석기시대였다.그래도 돌을 갈아서 날을 만들 수 있었다.그 신석기시대에 그림은 어땠을까.빗살무늬토기의 간단한 무늬처럼 기초적인 형태를 겨우 사용하고 있다.아주 간략한 기호로 보이는 이런 미술에서 감상과 같은 심미적인 목적을 내세우기는 어렵다.그 옛날에 아름다움을 위한 미술이란 상상하기 어려웠던 일임이 분명하다.

그렇게 몇 천 년을 거슬러 올라가도 없을 것 같은 ‘미술’로부터 다시 더 시간을 올라가 보면 어떨까.몇 천 년 단위가 아니라 몇 만 년을 거슬러 올라가면 말이다.그러면 그 때는 신석기도 아닌 모두가 알다시피 겨우 깨어낸 조각 석기를 쓰는 구석기 시대다.그런데 그 때의 미술이 알타미라나 라스코 동굴 속의 그림들에 나타나고 있다.숨 쉴 듯 힘차게 돌진하는 동물들의 표현은 지금 보기에도 놀랍도록 생생하다.그건 너무나 힘차고 생동하는 그림이다.우리는 수렵으로 먹이를 구하던 그 까마득한 옛날의 그림이 아름다움을 목적으로 했으리라고 도저히 생각할 수가 없다.동물을 많이 잡게 해달라는 주술적 목적이거나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신앙적 기원과 같은 몇 가지의 목적을 추측할 뿐이다.

다시 확인하면 미술이라는 말은 처음 태어난 이후 기껏해야 300년이 안 되는 시간을 존재해온 말이다.그러니 미술이라는 말이 까마득한 옛 그림까지 다 해석해낼 수 있는 말이라고 믿어서는 물론 안 될 것이다.언어의 개념 한계가 정해진 것이 아니라 ‘열려있다’는 것은 모리스 웨이츠(Morris Weitz)가 한 말이다.끊임없이 새로운 활동이 나올 수밖에 없는 예술이나 미술이라는 말의 뜻은 원래 열린 개념(open concept)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미학’에도 그런 오해가 있다는 것일까.물론이다.말 그대로 미학은 아름다움의 학문으로 이해되고 있는 듯하다.그래서 때로는 아름다움을 대신하는 말로도 쓰이고 있다.미학은 독일사람 바움가르텐이 라틴어로 쓴 ‘에스테티카(Esthetica)’에서 나온 말이다.이 책은 철학자 칸트가 강의 교재로 사용했는데,이성적인 것과 구분되는 감성적인 분야를 다루기 위해서였다.다시 말하면 이성의 학문과 구분되는 ‘감성학’이 바로 미학이라는 말의 원래 의미다.미학을 ‘감성적 인식의 학(學)’이라고 했던 것이 바로 이 말의 진정한 뜻이다.

미적인 것이 미학의 주제가 아니라는 것은 아니다.문제는,그 말이 인간 감성의 모든 것,즉 희로애락과 미추 모두가 미학의 주제라는 것을 잊게 할 수 있다는 점이다.그런 점에서 미학이라는 말도 너무 남용된 면이 있다.서구로부터 수입되어 번역된 한자문화권의 수많은 말들처럼,미술과 미학도 아름다움이 들어간 번역어가 되었다.원래 뜻보다 번역된 말뜻으로만 사용되는 것은 주의해야할 이유가 아닐 수 없다.

>>> 최형순 미술평론가

정선에서 태어나 정선고·강원대를 졸업했다.서울대 미술이론 석사,홍익대 미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전북도립미술관 학예실장 등을 역임했다.1998년 구상전 공모 평론상을 수상하고 미술평론가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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