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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비의 사이비 울음소리

데스크 눈
남궁창성 서울본부장

남궁창성 2018년 07월 30일 월요일
▲ 남궁창성 서울본부장
▲ 남궁창성 서울본부장
태어날 때 순하게 나와 제 엄마에게 효도하니 ‘효순’이라 불렀다.자라면서 부모가 몹시 사랑하여 일부러 혀짤배기소리로 부르다 보니 ‘호뚱’이가 되었다.더 자라 검고 부드러운 머리털이 나풀나풀 이마를 가려 마치 게의 앞발에 난 털과 같아 ‘게앞발’이라 했다.엄마 아빠가 혹 다투면 옆에 와서 귀여운 미소로 마음을 풀어 주곤했다.또 아빠 엄마가 혹 때가 지나도록 밥을 먹지 않으면 애교스럽게 “진지드셔요”라고 했다.태어난지 24개월만에 마마를 앓았다.제대로 곪지를 않아 까만 점이 되며 설사를 하더니 하루만에 숨을 거뒀다.모습이 단정하고 예뻤는데 병이 들자 까맣게 타서 숯처럼 됐다.죽기 전에 다시 열이 오를 때에도 엄마 아빠에게 잠시 어여쁜 미소를 보여 주며 예쁘게 말했었다.가련하다.구장이도 세 살에 죽어서 마재에 묻었는데 이제 또 너를 여기에 묻다니.오빠 무덤 곁에 둔 것은 서로 의지하며 지냈으면 해서란다.다산 정약용(1762~1836) 선생이 1794년 정월 효순을 잃고 쓴 비통한 글이다.

아내가 말했다.“다른 집 남자들은 꽃나무를 좋아해 비녀와 팔찌를 뒤져 사들이기까지 한다는데 당신은 집이 낡았다고 꽃나무까지 팽개쳐두나요” 나는 이렇게 대꾸했다.“이 집에 오래 살 마음이 없소.늙기 전에 당신과 고향에 돌아가 집을 짓고 꽃나무를 심어 열매는 따서 제사상에 올리고 꽃을 구경하며 머리가 하얗토록 함께 즐길 생각이오” 아내는 웃으며 즐거워했다.지난해 파주에 집을 짓기 시작하자 뜰과 담장을 배열하고 창문과 방의 위치를 잡는 일을 아내와 상의했다.공사가 끝나기를 기다려 꽃나무를 심으려고 했는데 그만 아내가 병들고 말았다.임종을 앞두고 아내는 “파주 집은요.집 옆에 묻어 줄 거죠”라고 말하며 눈물을 흘렸다.온 집안이 이사오던 날,아내는 관에 실려 왔다.집에서 백 보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장지를 정하니 기거하고 밥을 먹을 때 아내가 오가는 듯했다. 효전 심노숭(1762~1837) 선생이 1792년 여름 아내를 잃고 쓴 가슴을 먹먹하게 하는 기문이다.

친가의 집안일은 고모에게 묻고 외가의 집안일은 이모에게 물어보면 된다.고모나 이모가 없는 이에게 누나가 있다면 친가나 외가의 일을 모두 알 수 있다.집안일을 물으면 누님은 눈물을 흘리면서 가르쳐줄 것이고 또 슬픔에 잠겨서 말해줄 것이다.내가 어렸을 때 내 머리를 감겨준 이도,내 세수를 시켜준 이도 우리 누님이다.나를 업어 준 이도,나를 안아 준 이도 역시 우리 누님이다.내가 장가를 갔을 때 내 아내를 이끌고 간 이도 누님이다.누님이 시집을 갔을 때 나는 자형이 된 새 신랑에게 절을 했다.내가 누님을 뵈러 가면 누님은 반드시 반갑게 맞아서는 배고프겠다고 밥을 자꾸 퍼주고 춥겠다면서 술을 데워 내오리라.이름은 누님이라고 하나 실은 우리 어머니를 뵙는 듯했다.간서치 이덕무(1741~1793) 선생이 연암의 큰 누님을 위한 묘지명을 읽고 쓴 독후감으로,세월을 앞질러 바람처럼 떠난 우리 누님을 생각나게 한다.

네가 태어난지 세 돌 만에 네 아비가 죽었고 여섯 돌 만에 네 어미가 죽었다.네 안주인이 너를 거두어 길렀는데 병치레를 자주 하여 오래 살지 못할까 염려했다.네 안주인이 돌아갔을 때 너는 오척 동자였는데 더벅머리를 하고서 깡바른 잔나비처럼 힘든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내가 재앙을 만나 부자가 흩어지게 되자 너는 만 리 길을 울부짖으며 동해 간성 바닷가로 달려갔다가 또 관서 변방의 위원 골짜기로 달려가는 등 더위와 비를 무릅쓰고 발 뒤꿈치가 깨지고 이마가 벗겨져도 후회하는 기색이 없었다.빈한한 집에서 종 노릇하느라 두 눈을 늘 허여멀겋게 뜨고서 하루도 일찍 자거나 늦게 일어나 본 적이 없었다.내 부끄럽기 그지 없구나.네 배를 갈라보면 필시 불덩이같이 붉은 것이 지상위로 튀어 오를 것이니.평생토록 주인을 향한 핏빛 정성인줄 알겠노라.과문을 팔았다는 죄목으로 정조 정권에서 6년간 귀양살이를 했던 한원 노긍(1738~1790) 선생이 종 막돌이를 위한 제문이다.

올들어 여러 인물들을 저 세상으로 보내면서 죽은 이에 대한 산자의 송사가 하나같이 곡비(哭婢)의 사이비 울음소리와 같기에 옛 사람들의 이별을 살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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