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시작됐다.연일 40도를 오르내리는 살인적인 폭염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왠 뚱딴지 같은 소리냐고 할 지 모르지만 그래도 오늘이 가을에 접어든다는 ‘입추(立秋)’다.실제로 하루종일 뜨거운 열을 내뿜던 태양도 산 아래로 내려가는 시간이 빨라졌다.갈수록 밤이 길어지고 있다.무더위를 안고 한반도에서 꼼짝안고 있는 북태평양 고기압의 기세가 여전할지라도 해 떨어지면 그 위력이 약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또한 입추가 지나면 배추와 무를 심어 겨울 김장감 준비에 나서야 한다.그리고 이 때쯤이면 김매기의 수고로움도 한시름 놓을 수 있다.무서운 기세로 자라던 잡초의 성장도 주춤하기 때문이다.그 덕분에 입추가 되면 농촌 들녁은 한가함을 찾는다.그래서 어정거리다 7월을 보내고,다시 건들거리다 보면 8월이 지난다는 ‘어정 7월 건들 8월’이란 속담도 있는 모양이다.

작가 정비석은 “봄은 사람을 방탕하게 하고,여름은 게으르게 하고,겨울은 음침하게 하지만,가을만은 사람의 생각을 깨끗하게 한다”고 했다.요즘을 두고 월별로 세시풍속을 노래한 농가월령가는 “맹추(孟秋·7월)되니 입추 처서 절기로/화성은 서쪽으로 흐르고 미성은 중천이라/늦더위 있다 한들 계절을 속일소냐/빗소리도 가볍고 바람끝도 다르도다”고 노래한다.사람을 힘들게 하는 무더위가 강력하다고 한들 남은 더위는 가을이 오는 것을 시샘하는 ‘노염(老炎·늦더위)’이자 ‘잔서(殘暑·한풀 꺾인 더위)’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도 있다.

마침 어제(6일)는 동해안에 집중 호우가 쏟아졌다.지역에 따라 찔끔 비가 내린 영서지역은 여전히 폭염인데,동해안 일대는 비가 내리고 기온도 낮아졌다니 동해안에 살지 않는 도민에게는 마음만이라도 위안이 됐으면 좋겠다.이제 남은 것은 서늘한 바람과 함께 사람의 생각마저 깨끗하게 만드는 가을을 만나는 것이다.서늘한 밤이 되면 가을벌레 소리도 들려올 것이다.

물론 아직은 더위가 물러설 기미가 보이지 않지만,그럼에도 입추 얘기를 장황하게 꺼낸 것은 절기가 바뀌면 날씨도 변한다는 자연의 순리를 믿는 까닭이다.동시에 살인적인 더위를 버텨온 우리 자신에게 서둘러 시원한 가을을 선사하고 싶기 마음 때문이기도 하다.그러하니 힘내라 입추! 천남수 사회조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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