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정록 편집부국장·정치부장
▲ 송정록 편집부국장·정치부장
다시 시민사회인가.여야를 막론하고 시민이 화두가 됐다.야당의 비상대책위원장이 시민사회를 성장의 주체로 삼겠다고 하고 더불어민주당을 포함해 각정당 소속 자치단체장들은 시민에게 권력을 넘기겠다고 한다.시민사회 중심의 직접민주주의가 대세가 된 듯한 느낌이다.

사실 시민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은 좀 복잡하다.무엇보다 시민사회라는 용어 자체가 애매하다.변화의 대안으로서의 시민사회와 기득권화된 이미지가 중첩돼 있다.그러다보니 시민이라는 용어는 그 자체보다는 이를 활용하려는 집단이나 세력의 의해 호명되는 동원의 성격이 강했다.정치권은 늘 시민사회나 시민을 그들만의 이해관계로 풀어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춘천에 지부를 설립할 당시다.90년대 초반 일이다.경실련에 포함된 시민이라는 단어가 낯설었다.초대 사무총장이었던 서경석 목사가 춘천을 찾았다.개인적으로 대학교 은사님과도 친분이 깊다고 하기에 인사 겸 인터뷰에 나섰다.간단히 인사를 건넨 뒤 첫 질문이 “시민운동이 사회운동의 진보라고 생각하시느냐”였다.서 목사께서 굉장히 불편한 시선으로 바라(노려)보더니 “질문이니 대답은 하겠지만...”

답변내용은 생략이다.그것은 그 단체의 역사가 증명하는 것이니 답변을 소개하는 것은 의미가 없을 것 같다.그 이후 시민단체들의 활동은 전방위적으로 광범위하게 전개됐다.

시민단체의 확장은 정치권의 부름으로 이어졌다.그것을 가치판단으로 평가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을 것이다.이미 현실이고 동전의 양면이기 때문이다.시민사회라는 개념,규정의 모호성은 외피를 걷어내자 각자의 목적만이 오롯이 부각되기 시작했다.한림대 유팔무 교수같은 이들은 “시민사회의 어떤 영역도 정치권력의 지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며 시민사회의 정치화를 ‘유토피아적이고 허구적인 것’(시민사회와 시민운동 서문,1995)이라고 비판했다.

유 교수가 지적한 허구의 영역과는 달리 시민사회는 현실정치의 한복판에 들어섰다.김병준 자유한국당비대위원장이 국가주의를 비판하며 시장과 시민사회 중심의 자율주의를 주창하고 나섰다.이에 대해 보수진영과 진보진영 모두 김 위원장의 국가주의 비판에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면서도 전체적으로는 모호하다고 비판하고 있다.한국당 내부의 세력교체에 시민사회를 끌어들이려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여기에 강원도내 상당수 단체장들도 시민사회를 지방자치의 중심으로 끌어오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민회나 시민청,공론화위원회 등 집행부와 지방의회를 대신할 또다른 의사결정구조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시민 중심의 행정이 집행부의 의사결정을 보완할 지 아니면 역으로 집행부를 구속할 지는 미정이다.시민중심의 직접민주주의 도입이 의회 중심의 대의정치를 무력화시킬 지 여부도 불투명하다.그렇게 만들어진 정책이 현실에서 충돌한다면 그것은 또다른 혼선이자 막대한 사회적 비용의 낭비다.

시민사회를 정치나 행정에 끌어들이려는 시도는 대안과 합의라는 절차적 측면에서 이해할 만 하다.그러나 개념의 부정형이나 모호성은 늘 이를 표방하는 세력의 정치적 의도와 함께 해석되기 마련이다.더욱이 그 의도가 사전에 읽혀진다면 추진 동력을 얻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따라서 정치권이든 자치단체장이든 논의의 희화화를 막기 위해서는 목표와 비전을 보다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그리고 그 과정은 더 정교해야할 것 같다.그것이 모처럼 만들어진 담론화의 유일한 기대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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