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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처럼

이광우 원주 봉대초 교사

이광우 2018년 08월 16일 목요일
▲ 이광우 원주 봉대초 교사
▲ 이광우 원주 봉대초 교사
‘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 속에/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이다지도 욕될까.’ 중국 용정마을 윤동주 시인 생가 앞뜰에서 ‘참회록’을 낭송하고 힘든 시대를 살았던 시인의 삶을 이야기 나누며 그 마음을 헤아려보았다.그리고 시인이 앉아 별을 바라보았을 툇마루에 앉으니 뜨거운 햇살만큼이나 내 가슴도 불꽃처럼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지난 7월 26일부터 8월 2일까지 강원교사역사기행연구회 회원들과 함께 중국 대련부터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까지 항일독립유적지를 답사했다.첫 답사지인 뤼순감옥에서는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 의사와 역사학자 신채호,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독립운동가 이회영 선생의 고통스러웠지만 정의롭던 마지막 삶의 발자취를 느낄 수 있었다.화룡과 도문의 청산리,봉오동 전투 전적지를 찾아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비포장도로를 한 시간 넘게 달려야 갈 수 있는 곳이 청산리전투 전적지였고 저수지 옆 흙더미 속에서 한참을 헤맨 뒤 찾아낸 옛날 봉오동 전투 안내비석과 빨간 천으로 가려놓은 전적지 비문은 1920년 우리 독립군들의 피와 땀과 희생이 서려있는 곳임에도 잊혀져가는 것 같아 너무 안타깝고 서글픈 마음이 들었다.하지만 누군가가 놓고 간 국화꽃바구니를 보면서 역사를 잊지 않기 위해 찾아오는 많은 사람들을 위해 우리 정부가 앞장서서 항일전적지를 잘 보존할 방법을 찾았으면 좋겠다.

일제강점기 수많은 독립군들이 중국북간도에서 러시아 연해주로 넘어가고 넘어오던 그 길을 따라 러시아 핫산군에 있는 크라스키노 ‘단지동맹비’에 갔다.1909년 2월 7일 안중근 의사와 11명의 애국 열사들이 함께 왼손 넷째 손가락을 잘라 흐르는 피로 ‘대한독립’ 네 글자를 세긴 곳이다.그리고 ‘조국의 독립과 동양의 평화를 위해 단지 동맹하다’는 단지동맹유지는 우리 독립운동가들의 항일운동이 동양의 평화까지 꿈꾸는 큰 운동이었음을 알 수 있어 자랑스러웠다.안중근 의사를 도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연해주에 모인 의병들을 먹이고 입히고 무기를 제공하고,한인 후손들을 위해 32개나 되는 학교를 세운 독립운동가 최재형 선생의 삶을 뒤늦게 알게 된 것은 다행이면서도 부끄러운 일이기도 했다.

러시아 우스리스크 라즈돌리노예 기차역은 연해주 한인들이 화물칸의 짐짝처럼 실려 중앙아시아 황무지로 떠난 곳이다.1937년 소련 공산당의 고려인 강제이주로 약 18만 명이 시베리아 횡단열차에 태워져 연해주 삶의 터전을 떠나야 했으며 이 과정에서 2만 여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조국을 잃은 설움과 눈물을 흘리며 떠나야 했던 기차역에 서서 연구회 회원들과 함께 묵념을 했다.

나라를 되찾기 위해 꽃처럼 사는 길을 버리고 불꽃처럼 살다간 독립운동가들을 만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73주년 광복절을 맞아 우리 역사를 올바르게 알고 아이들이 만들어갈 미래에 든든한 주춧돌이 되려면 교사로서,현재를 살아가는 어른으로서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해본다.“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 보자/그러면 어느 운석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슬픈 사람의 뒷모양이/거울 속에 나타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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