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조차 질투할 작가의 위대한 예술적 행로
르네상스 정점 미켈란젤로
고된 프레스코 기법 통해
시스티나 ‘천지창조’ 탄생
현재까지 색채·형태 유지
자기만족 향한 끝없는 고집
최초의 현대적 작가로 지칭
신의 경지 다다른 작가정신

▲ 시스티나 성당 내부
▲ 시스티나 성당 내부
로마의 역사를 들어보지 않은 사람은 없다.고대에 지중해 전체를 호수로 감싸고 있는 대제국을 이루었던 것도 알고 있다.지금 이탈리아의 그 로마는 이제 또 다른 작은 나라를 품고 있다.교황의 나라 바티칸이다.19세기말 통일국가 이탈리아가 되기 전 반도의 중부에는 넓게 교황령이 있었다.무솔리니 때 그것이 지금처럼 로마 안에 있는 섬 같은 바티칸이 되기에 이르렀다.베드로 대성당과 앞 광장,그리고 바티칸박물관이 영토를 이루고 있을 뿐이다.그 1400여명으로 이루어진 작은 나라에 오늘도 세계인들이 몰려든다.위대한 예술가 미켈란젤로가 돋보이는 곳도 바로 그곳이다.

그가 활동했던 르네상스 또한 흘러간 한 때의 예술이 아니다.우리를 끊임없이 경탄하게 한다.그중에서도 르네상스의 정점에 미켈란젤로가 있다.미켈란젤로의 위대성은 너무나 확연했다.오죽했으면 르네상스 작가론을 쓴 바사리는 그를 ‘신과 같은’ 미켈란젤로라고 불렀을까.지금도 해마다 수십 건의 새로운 기사를 만들어낼 만큼 유명한 ‘모나리자’를 그린 레오나르도 다 빈치에게도,아름다움의 극치인 ‘성모자상’이나 ‘아테네학당’ 같은 거대한 벽화로 명성을 날린 라파엘로에게도 그런 칭호는 붙지 않았다.미켈란젤로가 위대하다지만 무엇이 그를 그토록 남다를 수 있게 했을까.

세계의 추기경들이 모여 교황을 선출하는 곳,그 시스티나 성당 천장을 다 메운 벽화가 있다.미켈란젤로의 천장화다.천장에 그린 그 벽화는 양 옆을 메우고 있는 수많은 대가들 벽화들을 압도한다.그 아래 열 지어 있는 수십 개의 벽화들만 해도 캔버스 500호의 몇 배에 달하는 크기들이다.그 많은 작품들이 아주 조그맣게 보일만큼 위로 펼쳐져 있는 파노라마는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장관이다.많이 본 그림으로 신과 아담의 손끝이 맞닿아 이루어지는 최초 인간의 창조 장면이 있다.창세기에 나오는 대로 빛과 어둠의 분리,해와 달과 별의 창조,바다와 육지의 분리,아담의 창조,이브의 창조,인간의 타락,노아의 제사,대홍수,술에 취한 노아로 이어지는 장면의 하나다.그 외에도 수많은 선지자의 모습이나 뒤틀린 포즈의 사람들,석상과 같은 장식물이 그 사이사이로 가득 천장을 장식한다.

이 그림을 그리기 전에 미켈란젤로는 모든 왕들의 권위를 굴복시킬 만큼 강력한 교황의 명령을 감히 몇 차례나 거부한 바 있다.교황과의 전쟁을 원치 않는 피렌체 정부가 나서서 설득한 끝에야 그는 로마로 돌아갔다.그런 그가 또 마지못해 맡았던 프레스코(fresco) 벽화 작업이 시스티나 천장화였다.붓으로만 그리는 것이 아니라 회벽을 발라가며 그 벽이 마르기 전에 물감을 입혀야하는 어려운 작업이었다.그것도 천장에다 말이다.그 고된 작업에 대해 그는 스스로 이렇게 기록했다.“나의 뒤로 젖혀진 몸은 시리아인의 활과 같다.”

그 벽화는 지금도 선명하다.미술관에서 작품을 다루다보면 견고하다고 알려진 캔버스의 유화도 그리 오래 가지 못하는 걸 보게 된다.보관정도에 따라 불과 50여년이 지나지 않은 작품도 부서질 듯 약해져있는 것이 흔하다.예스러운 박수근 작품의 물감이 얼마나 깊게 세월을 담았는지를 확인해야했고 에콜 드 파리 즉 파리화파(畵派)의 위트릴로 그림은 물감이 터져 일어나는 박락 때문에 전시에서 참으로 노심초사하기도 했다.그러나 여기 미켈란젤로의 프레스코에서는 벽에 물감이 스며들었기에 복원작업으로 표면의 때를 닦아내도 스며든 물감이 원래의 색을 그대로 보여줄 수 있다.

작업에는 산고가 따르듯 그 어려운 작업에서도 미켈란젤로는 자신이 만족할 수 있는 작품을 고집했다.그건 스스로가 자초한 고난이었다.그래서 하우저는 그를 ‘최초의 현대적 작가’라 부른다.근대적 천재개념이 나오기 몇 세기 전의 그지만 그 개념에서 미켈란젤로는 아무런 오차가 없을 정도다.당대까지 도제와 길드 전통은 여전하였지만,그는 조수에게 작품을 맡기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그를 만족시킬 조수가 있을 수도 없었을 것이다.대필이 예술에 허용되는 일이라고 일반화하기에 앞서,이런 예술가를 무엇보다 모범으로 삼아야하는 일이 아니었을까.이 천재가 결국 ‘신과 같은’ 경지를 일궈냈다.예술이면 다 신화가 되는 것이 아니다.미켈란젤로의 예술과 그런 예술의 작가라는 게 신화인 것이다.



>>> 최형순 미술평론가

정선에서 태어나 정선고·강원대를 졸업했다.서울대 미술이론 석사,홍익대 미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전북도립미술관 학예실장 등을 역임했다.1998년 구상전 공모 평론상을 수상하고 미술평론가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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