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동열 강릉본사 취재국장
▲ 최동열 강릉본사 취재국장
마을과의 첫 만남은 무척이나 당혹스러웠다.내비게이션 길 안내를 따라 한치의 어긋남 없이 차를 몰았는데도,농로 처럼 비좁은 길을 한참을 들어갔다.맞은편에서 차가 오면 멀찌감치 교행 공간에서 기다려야 했다.“이거 뭐지,길을 잘못 들어섰나”하는 불안감이 스물스물 피어오르던 때,마을 안내판이 나타났다.

경기도 화성시 ‘백미리 어촌체험마을’.한해 20만명이 몰려들어 해산물 채취에서부터 전통어업과 해양레포츠 체험을 즐기는 어촌체험관광의 절대강자로 통하는 마을이다.그런데 처음 방문하는 사람들은 너나없이 고개를 갸웃거린다.일반적인 관광마을과는 전혀 다른 상황에 맞닥뜨리기 때문이다.

우선 마을 진입로가 상식을 벗어난다.지방도,대로에서 1.5㎞ 이상 마을 안길을 타고 들어가야 하는데,주 진입로가 차량 교행이 불가할 정도로 비좁다.그런 길을 한해 13만∼20만명의 체험관광객이 드나든다니,빠르고 편한 것만 좇는 현대적 기준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그래서 마을 리더들을 만나자 맨 먼저 진입로를 넓힐 생각이 없냐는 질문부터 했다.그랬더니 곧 바로 ‘NO’라는 대답이 돌아왔다.아니 왜? 예상밖 답변에 잠시 멍해있는 나에게 그들이 설명한다.

“어차피 우리 마을이 수용할 수 있는 체험객은 한정돼 있다.예전에는 한해 20만명까지도 왔지만,요즘은 가급적 13만명을 넘기지 않으려고 한다.수용이나 케어를 못할만큼 체험객이 몰려들면,갯벌의 환경에도 악영향을 미친다.다소 불편이 따르더라도 구불구불 시골길을 유지하는 것이 좋다.관광객들도 정감 넘치는 길에 대한 호의적 반응이 훨씬 많다.”

설명을 듣고나니 빠르게 지나쳤으면 못 봤을 백미리 마을의 동화 같은 풍경화가 파노라마를 펼친 듯 다시 그려진다.잠시 전,차창 밖으로 손에 잡히듯 지나간 들꽃과 복숭아 열매까지∼.

그런데 마을 안,바닷가에 들어서니 또 한번 예상 밖 시설이 나를 기다린다.철조망이다.그것도 상단에 가시철조망이 칭칭 감긴 완벽한 경계 철책이다.그런 철조망이 해변에 끝간데없이 둘러처져 있다.

그들에게 또 물었다.여긴 아직 철조망 철거 계획이 없냐고? 그랬더니 “철조망에 대고 매일 절이라도 하고 싶은 기분” 이라는 뜻 밖의 대답이 돌아왔다.철조망 덕분에 갯벌 자원과 생태환경이 유지된다는 것이다.그들은 나중에 미관 때문에 가시철조망을 걷어내는 일이 생기더라도 경관형 휀스시설로 갯벌을 보호할 것 이라는 다짐도 잊지않았다.

갑자기 그들의 고집이 부러워진다.이기를 위해 많은 가치를 희생시키는 이 몰가치적 편리 추구 시대에 던지는 무언의 웅변 아닌가.

물론 백미리가 지금 걷고 있는 길이 어촌관광지를 가꾸는 절대선 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그러나 무한개발과 속도경쟁이 넘치는 때,우리 동해안에도 고집스레 거꾸로가는 마을 한두개쯤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나 혼자만의 바람일까.

불현듯 생각이 많아진 내게 백미리 마을 관계자가 한마디 더 보탠다.“우리 마을 갯벌에서 인공시설은 전통어법으로 고기를 잡는 ‘독살’과 화장실 딱 두개 뿐입니다.”

그리고 팁 하나 더.백미리 체험안내소는 태풍이 불어도 1년 365일 연중무휴다.단 1명이 찾아오더라도 오늘 왜 체험을 할 수 없는지 설명해줘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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